◎공산주의유산과 러시아 민주화/단순 이념청산 아닌 산업선진화 필연 과정 한국정치학회 주최로 18∼20일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세미나에 참석중인 러시아과학원 철학연구소장 비야체슬라브 S 스티오핀박사가 러시아의 공산주의유산 청산과정을 분석한 글을 한국일보에 기고해왔다. 스티오핀박사는 북한의 변화가능성과 관련지어 러시아의 변화를 분석한 글에서 러시아의 민주화는 단순한 이념청산작업이 아니라 피터대제이후 계속돼온 산업선진화과정의 하나로 파악돼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편집자주>편집자주>
지금 러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에의 몸부림을 단순한 소련공산주의체제의 청산으로 봐서는 안된다. 19세기 낙후된 러시아제국을 선진대열에 올려 놓으려고 대개혁을 했던 피터대제의 공업화노력, 20세기초반 알렉산더 2세의 산업개혁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진행의 일환으로 관찰해야 한다. 1917년의 공산혁명 역시 이런 맥락에서 설명돼야 한다.
서구사회가 열어놓은 기술문명시대는 과거 전통문화와의 대결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혁명적인 것이었다. 기술문명시대이후 고대 이집트, 중국, 인도, 유럽 각국의 전통문화는 이 기술문명을 재빨리 도입해 새 기술문명시대에 동참하거나 아니면 기술문명에 깔려 그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는 양자택일의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야 했다. 많은 전통문명이 식민지가 됐다.
러시아는 피터대제때 이 도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전통문명과 멋진 조화를 이루면서 눈부신 기술문명시대를 이루어 갔다. 그러나 러시아전통문화, 즉 주로 농민속에 녹아 있던 전통적 가치개념이 기술문화와 부딪쳐 피터대제의 개혁은 서구처럼 오랜 지속발전을 하지 못했다. 러시아전통주의는 기술문명의 도입에 가속화작용을 하기도 하지만 저지하는 역할도 하곤 한다.
러시아가 1917년께 다시 서구선진대열에서 형편없이 떨어져 있게 됐을때 볼셰비키들은 또 한번 선진대열에 도전해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감을 갖게 됐다. 그러나 볼셰비키의 대개혁운동은 사회생활의 극단적 중앙집중화로 인해 거대한 대중폭력을 수반하게 돼 결국 수백만 인민이 희생되는 비극을 가져왔다. 러시아는 볼셰비키의 산업화도전으로 2차대전의 승리자가 되는 선진국이 되긴 했지만 대중폭력에 의한 개혁의 한계를 서서히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1970년대에 러시아는 다시 선진공업국 대열로부터 형편없이 떨어져 있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게 됐다. 공산주의가 만든 사회구조로는 더 이상 고도정보사회의 선진산업국이 될 수 없는 약점이 있었다. 소련은 폐쇄사회, 억압사회여서 선진대열에 들어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보의 자유로운 접근이 불가능했다. 여기서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가 나왔던 것이다. 러시아는 민주주의가 필요했으며 이를 위한 시장경제체제가 필요했다. 그 결과 시민생활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었고 중앙집권화하고 있던 당을 무너뜨리게 됐다.
시장경제가 민주주의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시장경제는 민주주의를 여는 과정이며 따라서 이 시장경제체제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는 절대로 민주주의가 개화할 수 없다. 자유로운 정보와 재화가 수요공급의 원칙을 따라 흐르는 사회가 돼야만 민주주의가 피어나게 된다.
하지만 러시아의 개혁은 언제나 위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때문에 현재의 러시아개혁이 성공하려면 민주발전이라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성공해야 하는 동시에 개혁의 시발자인 정치권력층이 역시 성공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절대명제이다. 인민은 자유와 권리를 발전시키고 정부는 개혁된 사회에서의 법과 질서를 이끌 수 있는 힘을 갖춰야 한다.
이런 양자적 진전을 위해 러시아가 보유한 자원을 고찰해보면 적어도 자원이라는 면에서는 별로 어려울 게 없는 입장이다. 우선 풍부한 원자재가 있다. 그리고 비록 군사부문이라는 냉전시대의 유물에 집중돼 당장 쓰기에 불편하기는 하지만 대단한 기초과학과 고급과학기술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런 자원들을 정보경제발전, 민주주의경제발전에 어떻게 동원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러시아는 많은 투자를 해야 할 단계에 있다.
북한의 경우를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내부에 관해서나 김정일에 관해 별로 알려진 것이 없어 이들의 장래를 예측하기는 매우 어려운 입장이나 분명한 것은 김일성을 개인으로보다는 하나의 체제, 정치구조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소련공산주의체제가 그랬듯 공산독재체제를 유지해오는 동안 선진화에 실패했다. 한국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불과 한 세대동안에 장족의 경제발전을 한 것과 매우 대조적으로 북한은 낙후된 폐쇄사회를 그대로 지속하고 있다. 위로부터 오든 밑으로부터 오든 북한사회도 민주주의의 거대한 흐름을 결국 받아들일 것은 분명하다. 그 시작은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이 될 것이다.
한반도의 재통일문제는 적어도 국제환경으로 볼 때 매우 적절한 시기에 이르렀다고 본다. 세계는 다원화시대에 들어섰으며 아무도 한반도통일에 위협을 느끼거나 불안을 느낄 이유가 없게 됐다. 독일의 단결은 유럽의 평화와 안정을 깨뜨릴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결국 독일은 통일되지 않았는가.<러시아과학원 철학연구소장>러시아과학원 철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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