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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사망과 남북한과제/길승흠(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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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사망과 남북한과제/길승흠(특별기고)

입력
1994.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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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성의 11박12일의 장례식은 어제 드디어 끝났다. 지나간 반세기동안 김일성은 나라를 분단·고착화시켰고, 6·25전쟁을 일으켰고, 피의 숙청을 거듭하였고, 세습독재를 밀어붙였고, 게다가 최근에는 동족을 겨냥한 핵무기를 개발한 주범이었다. 지난 6월에는 제2의 한국전쟁마저 감행하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긴장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정부는 대응책으로 「현대전에는 전후방이 따로 없으니 유사시 피란행 차량운행을 삼가야 한다. 유사시를 대비하여 2주∼1개월분의 식량·연료, 취사도구, 침구 등 생필품과 의약품·위생재료 등의 비상품, 그리고 화생방전을 대비하여 방독면, 비닐옷, 마스크 등을 갖추어야 한다」는 「전시국민행동요령」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온 국민에게는 아찔한 며칠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김일성은 전혀 「새로운 얼굴」을 가지고 남북한정상회담의 개최, 미북3단계회담의 재개를 제의하고 나왔다. 정부는 그 제의를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 중국의 모택동이 죽음을 몇년 앞두고 미국 등 서방세계와 우호관계를 맺었던 것과 같이, 김일성도 고령이 되니까 정말 바뀌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기대감이 우리 국민 사이에 삽시간에 퍼졌다. 평양에서의 남북정상회담 후에는 김일성의 서울방문도 기대되었다. 긴장조성자, 6·25 전범자가 갑자기 긴장해소자로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지난 8일 새벽 2시에 사거하고, 어제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제 남한의 온 관심은 김정일체제에 쏠려 있다. 특히 세가지 이유때문이다. 첫째는 김일성의 죽음이 자연사냐 음모사냐의 문제이다. 남한인들에게는 너무나도 중대한 관심거리이다. 자연사라면 김일성이 추진한 유화정책이 김정일체제에 의해서도 계승되겠으나, 만일 음모사라면 앞으로의 김정일체제는 강경일변도로 달리다가 끝내는 한반도에 「너, 나 모두가 죽는」 경지까지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10여일간의 여러가지 정황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사 쪽으로 믿게 해 주고 있다. 두번째는 김정일의 새 체제가 제대로 굳혀질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다. 「간질병이 있다」 「북한인민군의 경력은 1년 밖에 안된다」 「계모 김성애, 이복동생 김평일, 삼촌 김영주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북한경제는 최악의 상태에 있다」는 등의 사실은 김정일체제가 자리를 굳히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럴 경우 북한에는 권력싸움이 벌어질 것이며, 그 와중에 무슨 이변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남한에는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김일성종합대학 만경대혁명학원을 다녔으며, 이때 알게 된 자기 나이 또래의 비교적 합리주의적 동료들을 당·군·정부에 널리 포진시켜 왔으며, 중국이 국익상 김정일체제의 공고화에 도움을 주려 하고 있다는 등의 사실들을 참작하면 김정일체제는 비교적 순조롭게 굳혀갈 것 같은 전망이다. 마지막 세번째는 김정일 정권에서 정책이 변화할 것인가 여부에 대한 관심이다. 김정일은 부친이 사거직전 추구하였던 유화노선을 바꾸어 강경노선으로 가지 않을 것인지, 또는 강경세력들에게 에워싸여 그런 방향으로 정치를 이끌고 가지 않을 것인지, 남한에는 지대한 관심사이다. 여기서 일컫는 강경노선 중 대표적인 것은 북핵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북한이 체제유지상 어떻게 하든지 핵을 보유하겠다는 주장을 계속하면, 미국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고 끝내는 긴장국면으로 가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면 앞으로 남한은 북한의 김정일체제와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 남한은 세가지 과제에 유념해야 하리라고 본다. 첫째는 아무래도 북핵대책이다. 북한은 그동안 「핵외교」를 교묘하게 전개하여 많은 것을 얻어냈다. 북한은 한미 팀스피리트를 중단시켰고,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6백개 이상)도 모두 철수시켰다. 북한은 북한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1∼2개의 핵무기를 체제유지상 어떻게든 보유하든가, 그것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 일본 한국으로부터 값비싼 대가를 받아내든가의 두가지 중 어느 것을 택할지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한국은 북한이 후자의 선택을 하도록 유도해야 하리라고 본다. 두번째는 김정일체제 굳히는 일에 남한도 도와야 하리라고 본다. 전술한 바와 같이 김정일정권의 불안감은 남한에 이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세번째는 좀 더 장기적인 과제로 「통일」을 준비해 가는 것이다. 북한에는 김일성의 사망으로 다른 고령의 빨치산세대들도 곧 정치에서 퇴장하게 된다. 그들의 자리는 물론 좀 더 실무적이고 기능적이고 합리주의적 세대들로 채워진다. 그들은 북한의 이념상 「평등」을 추진해 갈 것이다. 한편 남한에서도 곧 구세대들이 물러가고 신세대들이 등장하여 영호남대결구도를 없애고, UR·WTO시대를 맞이하여 한국의 「능률」개발에  전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 두 세력들이 가까운 장래에 만나서 남북한통일을 이룩하면 한반도에는 훌륭한 한국이 탄생할 것이다.<서울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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