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사망은 북한은 물론 전 세계에서 한 시대의 종언을 의미한다. 동시에 이미 핵무장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 한반도에서의 새로운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의 시대를 개막하는 것이다. 김일성의 자리는 그가 신봉하던 마르크스주의와는 달리 말도 많았던 아들 김정일에게 넘어갈 것이 확실시 된다. 북한인민들의 집단적 동요에도 불구, 지난 20년간 김일성이 신중히 준비한 52세 아들로의 권력이양작업은 무리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북한 지도부의 핵심 인물들로 둘러싸인채 김일성의 시신앞에 선 김정일의 참배모습은 이같은 왕조식 권력세습이 마무리됐음을 알리는 상징적 장면이다. 그는 이번주안에 국가주석직을 비롯한 그의 아버지가 지녔던 모든 직책들을 공식적으로 물려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카리스마와 혁명적 경험이 부족한 김정일로서는 과연 그 자리에 합당한 인물인가하는 주위의 의구심을 풀어줘야한다.
외부세계가 이를 판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19일의 장례식에는 한국인만이 참석할 수 있었다. 오는25일로 예정됐던 남북정상회담도 무기 연기됐다. 이「친애하는 지도자」에 대해 알려진 사항은 여자와 포도주,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 정도이다.
김정일은 1백여편의 영화제작에 직접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7년부터 91년까지 주평양 러시아특파원이었던 알렉산데르 플라트코프스키씨는 『김정일이 새벽 2,3시에 영화스튜디오에 나와 배우들에게 혁명성이 부족하다든지 창의력이 없다든지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이어 연기력 향상을 위해 연습하라고 독려한 후 끝에는 항상 「혁명정신의 승리를 축하하는」파티가 열렸다』고 말했다. 이런 모임에 참여했던 한 배우는 『파티에는 노래와 술과 섹스가 넘쳤다』고 기억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잔혹함도 엿보인다. 한국정보기관은 김정일이 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을 비롯, 87년 KAL기 폭파사건, 83년 랑군사건등 일련의 테러행위의 조종자로 보고있다.
또한 간과할 수없는 사실은 그가 80년대 중반부터 실질적인 국정운영을 담당해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에 비해 왜소하고 무능력하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힘든 것 같다. 또 아버지로부터 충실한 후계수업을 받았더라도 현재 직면한 도전은 매우 힘든 일이다.
북한의 경제난은 구소련붕괴후 러시아가 원유등 에너지와 기계류에 대한 대금을 경화로 지급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북한은 현재 석유 및 식량의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일이 중국의 도움으로 앞으로 몇년동안은 그런대로 버티겠지만 곧 주민에게 식량 및 생필품공급을 늘려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같은 작업은 쉽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를 회생시키기위해서는 북한당국이 대외교역을 늘리고 외국자본을 도입해야하기때문이다. 하지만 김정일이 개혁파의 도움을 얻어 경제를 개방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정통성인 주체사상을 뒤집어야 하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너무나 좁다.
김정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있는 개혁파 김달현의 개방노선도 그같은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지난 90년 중국을 방문,『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철의 장막이 아니라 모기장』이라며 『모기장은 바람은 통과시키지만 모기는 막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북한 경제체제는 과거소련이나 중국보다 더욱 경직되어 있다. 갑작스런 개혁은 소련이나 동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정권붕괴를 몰고온다. 김정일은 이같은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있다.
때문에 김정일은 현재 경제적 딜레마에 빠져있다. 경제개혁을 추진할 경우 정치적 지지기반이 무너지고 현재의 쇄국정책을 계속하면 북한경제가 더욱 피폐해져 굶주림에 지친 인민들이 정권에 항거하는 또다른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더욱 큰 문제는 8월말이면 닥쳐올 북한의 핵위기다. 북한핵문제는 지난달 지미 카터전미대통령이 김일성을 만나 북한의 핵동결약속을 얻어냄으로써 협상국면에 와있다. 실제로 평양측은 약속대로 5원자로에서 꺼낸 8천여연료봉을 재처리하거나 새연료봉을 투입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오는 8월말이면 저수조에 들어있는 8천여 폐연료봉을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처리해야한다.
이와관련, 김정일은 클린턴미대통령과 협상을 통해 외교적 성과를 얻어내려할 것이라고 일부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노련한 북한전문가들은 그가 미국과 관계정상화를 도모하면서 기존의 핵개발계획을 추진하는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들지 않을까 우려한다.
지금까지도 북한과의 거래는 쉽지 않았다. 앞으로는 더욱 어려워 질것이다.<정리=윤석민기자>정리=윤석민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