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뙤약볕 아래엔 조기 생기 잃은채 걸려/방송선 흐느끼는 여자목소리 간간이…【판문점=김삼우기자】 민족분단의 주범 김일성의 장례식이 치러진 19일 분단의 상징 판문점에서 바라 본 북쪽땅은 무거운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기괴한 느낌마저 안겨주는 침묵은 변화에 대한 북한인들의 두려움을 일러주는 듯했다.
우리측 경비초소에서 손에 잡힐 듯이 내려다 보이는 북한의 기정동 선전마을과 주변 논에는 인적이 끊겼다. 이곳에는 평소 1백여명의 주민들이 나와 농사일을 했었다. 김일성사망후에도 10여명씩은 모습을 보였다.
김일성이 40여년간 쌓은 북한체제의 공허한 위세를 상징하는 듯한 높이 1백60의 인공기 게양대에는 검은 리본 2개와 함께 조기로 걸린 인공기가 뙤약볕아래 생기없이 늘어져 있었다.
북측의 판문각도 정적에 싸여 있었다. 북한 병사 2명이 판문각 1층 창문으로 내외신 기자 30여명을 물끄러미 내다보다가 얼굴을 감추었다. 정문앞에 부동자세로 서 있던 정복차림의 병사 1명은 사진기자들의 카메라세례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여느때 이들은 남쪽 취재진이나 관광객들에게 일부러 다가와 말을 건네거나 포즈를 취해 주는등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이날은 활기를 잃고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
이날 상오까지 전날과 같이 김일성을 추도하는 울음섞인 방송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그러나 하오에는 이마저 끊겼다.
우리 군의 포대경에는 이날 상오 까마득히 보이는 개성시내 김일성동상앞에 1만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관측됐다. 추모행사가 진행중인 듯했다.
일본인 관광객 40여명이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있는 뒤에 기정동과 북쪽의 들녘은 분단의 비극과 김일성사후의 막연한 변화의 조짐을 함께 담은 채 적막속에 누워 있었다.
【애기봉=김동국기자】 서부전선 최전방고지 애기봉에서 바라본 북쪽 땅 선전마을은 간간이 대남방송을 통해 김일성 애도곡과 김일성 김정일부자를 찬양하는 구호가 들릴 뿐 가라앉은 모습이었다.
상오 9시10분께 짙은 안개속에 해물·월정 등 선전마을 주민 1백여명이 흰색이나 검은색 옷을 입고 줄지어 뒷산계곡쪽으로 넘어갔다. 추모행사장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추측됐다.
상오11시 안개가 걷히자 북한군 병사 3∼4명이 한가롭게 제초작업을 하는 모습과 학생차림의 민간인 3명이 체조하는 모습이 망원경에 잡혔다.
무거운 침묵을 깨뜨리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위업을 높이 받들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각하께서는 인민군의 대장군이며 명장중의 명장…」이라는 방송이 반복되다가 「김일성수령」을 외치며 흐느끼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해병청룡부대 김형구중위(29)는 『평소보다 오히려 조용하다』고 말했다.
하오가 되자 애기봉 전망대에는 방학을 맞은 어린이들이 부모 손을 잡고 몰려들기 시작, 이날 하루 5백여명의 관람객이 북쪽땅의 「변화」를 호기심어린 눈길로 살폈다. 일곱살때까지 황해도에서 인민학교에 다녔다는 백태암씨(52·서울 마포구 대흥동)는 『전쟁의 고통을 안겨준 김일성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날이지만, 정작 기쁨보다는 착잡함이 앞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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