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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 92년에도 만날뻔”/서동권 전 안기부장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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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 92년에도 만날뻔”/서동권 전 안기부장 밝혀

입력
1994.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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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극비방북 의제·시기 등 논의/북,김일성생일날·평양고집 무산 지난 92년 6공당시 노태우대통령과 북한주석 김일성간의 남북정상회담이 성사직전까지 갔으나 북측이 회담시기와 장소를 김일성 80회생일인 4월 15일과 평양으로 고집, 끝내 무산됐다고 당시 안기부장을 지낸 서동권씨가 18일 밝혔다.

 서씨는 이날 연합통신과 가진 회견에서 안기부장 재직시절 자신이 직접 북한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추진했음을 강력히 시사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서씨는 『6공당시 북한이 고려연방제 수용등 역대정권에 내걸던 정상회담 조건을 철회, 회담이 성사직전에 이른 적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북측은 회담의 시기와 장소만은 4월 15일 평양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회담이 무산되었다』고 밝혔다.

 서씨는 이와 관련한 자신의 방북에 대해 『여건이 성숙할 때 까지는 그 문제에 대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면서도 『6공은 3공의 이후락중앙정보부장이나 5공의 장세동안기부장의 방북보다 훨씬 활발한 물밑접촉을 북한측과 가졌다』고 말해 자신의 방북사실을 사실상 시인했다.

 이와 관련, 서씨는 지난 90년 10월초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 노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한뒤 평양근교 김일성의 별장에서 김정일을 배석시킨 가운데 김일성과 만나 정상회담의 의제와 시기 및 장소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씨는 그러나『김일성은 당시 남북정상회담에 응해주는 것이 남쪽에 큰 시혜를 주는 것처럼 생각하는듯 했다』면서『아무리 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김일성의 80회 생일을 축하하는 것으로 이용당할 수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북한측의 4월15일 평양개최안은 서씨의 방북에 이어 92년 3월 윤기복 당시 노동당 대남담당비서가 서울을 극비 방문해 우리측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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