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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희생양」 될수 있다/러 알렉산데르 제빈 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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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희생양」 될수 있다/러 알렉산데르 제빈 특별기고

입력
1994.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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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정책 실패 “멍에”… 단계개혁 기댈듯 평양주재 타스통신 특파원을 지낸 러시아의 북한 전문가인 알렉산데르 제빈은 15일 김정일체제를 전망하는 글을 한국일보와 러시아 세보드냐지에 동시에 특별기고했다. 제빈은 「교주의 죽음」이라는 제하의 이 글에서 김정일이 「김씨 왕조」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을 지적했다.

 북한의 모든 언론매체는 김일성의 후계자 김정일에게 모든 충성을 바치자고 호소하고 있다.

 김일성은 생전에 김정일주변에 능력있고 충성스런 인물들을 모아주고 김정일의 장단점을 강화·보완해 줄 수 있도록 많은 인물들을 교체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했다. 김정일 자신도 그에게 충성하는 인물들을 등용하는 작업을 직접 추진했으며 이 과정에서 친인척관계를 맺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이는 김정일체제를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됐다.

 현재 30여명의 친인척들이 당과 정부의 요직을 맡고 있으며 삼촌인 김영주가 최근 부주석으로 복귀한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김일성 가문의 내부 결속력에 다소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북한 지도부는 현재 상당히 안정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일의 신임을 받으면서 그를 지켜줄 수 있는 인물은 강성산정무원총리, 연형묵전총리, 김용순대남담당비서, 김달현전부총리등이다. 이들은 앞으로 김정일체제를 굳혀나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며 정책노선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은 군부를 대표해 그 그룹에 속해 있다.

 김정일체제가 직면하게 될 도전은 무엇보다도 날로 악화되는 경제사정일 것 이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말 당중앙위 제21차 총회에서 제3차 경제사회개발 계획이 실패했음을 사상 처음 인정했으며 대외경제 관계개선과 경제개혁이 없는 한 현상태가 회복 불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김정일과 측근들은 인민들에 대한 경제외적인 강요와 세뇌작업을 통한 쇄국정책을 더이상 지탱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루마니아등 동유럽국가들의 사례를 볼때 경제개혁은 국내정치를 통제할 수 없게 하며 이는 지도부 전체의 생명력, 최소한 지도자의 실각을 불러올 수있다. 만약 북한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져 김씨 일가의 권력유지자체가 위협을 받는다면 일가중 한 그룹이 김정일 대신 다른 인물을 내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 새 지도부의 정치적 운명은 특히 핵문제를 해결하고 미국 일본등과 관계정상화를 통해 이익을 어떻게 극대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같이 불가피한 경제개혁과 정치노선의 수정을 감안할 때 김정일은 과거의 정책적 실수에 대한 희생양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이 될 것이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공식 지명되었다는 사실이 곧 그가 그 자리를 계속 유지한다는 보장은 아니다. 현재 김씨 일가는 권력을 유지해야하는 공동이익과 과거의 실수로 가문전체가 몰락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일견 단합된 것으로 보이지만 국내외적으로 체제유지에 불리한 요소가 가중되고 일가내 반목이 첨예해질 경우 지도부내 커다란 변화는 불가피하다.

 북한의 신지도부는 초혁명적 구호를 앞세우면서 현체제를 계속 유지하고 군사·경제 파트너인 중국 러시아와의 변화된 관계, 한국에 유리하게 전개될 한반도의 세력균형, 국제정세 변화등에 적응하려 할 것이다.

 이같은 적응체제는 동유럽처럼 「아래로부터의 조용한 혁명」이나 구소련처럼 「위로부터의 개혁」이 아닌 바로 김정일과 그 측근들로부터 나올 것이다.

 김정일은 앞으로 상당히 광범위한 개혁을 시행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전반적인 개혁이 아니라면 60년대 흐루시초프소련공산당 서기장이 취했던 부분적인 개혁이 가능할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이 앞으로 정치적으로 보수노선를 답습하면서 경제개혁을 하는 북경식 시나리오를 채택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북한의 독창적인 정치체제와 지정학적 위치, 문화 및 역사적 유산등을 감안할 때 북한은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역사가 북한체제에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구소련 체제하의 중앙아시아 공화국들의 경험을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 즉 공산주의 속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고 상당 부분 유지하면서 기존 정치엘리트들이 권력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북한은 앞으로 혁명적이 아닌 단계적 개혁과 개방된 경제를 추구하면서 좀더 자유주의적인 노선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바로 북한 통치엘리트들이 그들의 권력과 입지를 유지할 수 있는 선택일 것이다.<정리=이장훈모스크바특파원>

□약력

▲75년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 졸업(국제관계 및 한국역사언어전공)

▲78∼79, 83∼90년 타스통신 평양주재 특파원 

▲현재 러시아극동문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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