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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의 히스테리 증상/이이춘 정치부장(데스크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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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의 히스테리 증상/이이춘 정치부장(데스크 진단)

입력
1994.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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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년 10월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을 취재하기 위해 3박4일간 평양을 다녀 온 적이 있다. 서울로 돌아온후 평양 체류기를 몇차례 나눠 보도하기도 했지만 그때의 평양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거리 곳곳에 김일성과 김정일부자를 찬양하고 주체사상을 강조하는 각종 구호만 요란하게 걸려 있을뿐 사람 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침묵의 도시. 광폭정치(폭이 넓은 정치)라는 해괴한 정치행태를 자랑하기 위해 만든 꼴불견의 대형 조형물이 즐비한 도시. 그 사이로 외부인에게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우중충한 각종 건물이 힘없이 늘어선 도시. 취재기자에게 한결같이 무표정하거나 접근을 두려워 하는 얼굴을 보이다가 「위대한 수령」김일성을 언급할 때면 경쟁적으로 찬양하기 바쁜 도시. 「어버이 수령」에 대해 조금이라도 비판을 가하면 악머구리 처럼 달려드는 도시. 북한당국이 엄선하여 만나도록 한 주민들에게도 생기나 활기를 찾아 볼 수 없는 도시. 꺼칠하고 힘없는 얼굴과 생활고에 찌든 모습만이 기억나는 도시. 그 도시가 평양이었다.

 평양과 북한에 대해 어느정도의 사전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평양을 겉핥기식으로나마 체험한후 내린 결론은 북한은 국가의 개념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집단」이라는 것이었다. 김일성부자가 국가형태만 갖춘 세습족벌 독재집단을 형성, 굶주린 국민을 볼모로 삼고 있다는 느낌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근 반세기 동안 평양에 앉아 북한을 호령하던 김일성이 죽자 아들 김정일이 대를 이어 「수령님」이 되는 모양이다. 전제적 군주국가에서나 가능했던 권력세습이 20세기말 평양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은 우리에게는 한반도의 남쪽까지 독재집단의 치하에 두기 위해 6·25전쟁을 일으킨 전범이다. 그는 그후에도 계속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하는등 남쪽을 지배하려는 허망한 꿈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런 김일성이 느닷없이 남북정상회담에 응해 온 것은 그의 사후에 아들 김정일의 세습체제를 안정시키고 국제적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남쪽과 대화를 한다는 모양새가 필요해서이지 정상간의 대화를 통해 남북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아니었다고 확신한다.

 북한에 「독재집단」을 만든후 민족의 장래를 위해 단 한번도 좋은 일을 한적이 없는 김일성이 죽자 북쪽에서는 「어버이 수령」을 추모하는 북한주민들이 히스테리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북쪽의 반응이 남쪽으로 전파되었는지 서울에서도 히스테리 증상이 일어나고 있다. 주체사상이 무엇이며 북한의 실상이 어떠하며 김일성부자가 북한주민에게 준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운동권 학생들이 김일성의 죽음에 조의를 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분향소까지 차리는 정신빠진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히스테리 증상이다. 이 증상은 정치권에도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야당의원들이 김일성의 죽음을 애도하고 조의를 표하기 위해 조문단을 보내야 한다고 국회에서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개혁파니 진보적 정치인이니하고 불리는 이들의 조문론 요지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죽었으니 향후 남북간의 화해와 신뢰를 도모하기 위해 조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외국의 조문사절을 받지 않겠다고 발표한 바 있는 북한은 조평통이라는 대남 위장단체의 이름으로 『남쪽의 조문단을 환영한다』고 발표하고 나섰다. 「어버이 수령」의 죽음까지 대남교란선동과 남쪽의 여론 분열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후안무치한 북한의 책동을 여과없이 되뇌이고 주장하는 사람은 친북파이지 민주인사가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도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부터라도 이 차이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남북대화를 용인하고 김정일체제를 인정하려는 정부의 태도를 이해하는 것은 어떻게 하든 전쟁의 재발을 막고 대화분위기를 조성,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현실론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지 김일성의 죄과를 용서하고 북한 「독재집단」의 과오를 인정한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점에 있어 정부도 명확한 역사적 인식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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