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망직후 북 일련의 상황봐도 가능성 커/훨씬전 구두유언·별도 유서 남겼을수도 <『이제 가야할 때가 온것 같구만…』 『수령님, 이대로 죽으시면 안됩니다. 기운 차리세요』 『정일아! 오마니 잘 모시고 형제들과 우애있게 지내라. 음… 그리고 내가 죽거든 당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를 빨리 소집해 안정을 찾아라』 『동지들, 내가 없더라도 우리 김정일조직비서를 잘 받들어 모셔야 해. 절대로 분열돼선 안돼. 똘똘 뭉쳐서 주체혁명의 과업을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구… 』 『수령님!…』>
물론 가상 시나리오다. 김일성의 심장이 멎던 순간 김정일을 비롯한 가족과 몇몇 측근들이 임종하면서 벌어졌음직한 「소설」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처럼 김일성은 과연 유언을 했을까. 했다면 그 내용은 무엇이고 시기는 언제쯤이었으며 또 형식은 어땠을까. 이같은 의문에 대한 실상은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과거 다른 사회주의국가들의 몇몇 지도자가 사망했을 때 유언을 했던 사례가 있고 김일성의 경우도 하루 정도는 병상에 누워 있다가 숨진 것으로 알려져 어떤 형식으로든 유언을 했을 가능성은 상당히 크다.
76년 9월 9일 중국공산당 주석 모택동은 사망직전 당시 수상이던 화국봉을 조용히 불러 『당신이 일을 하면 나는 안심이다』라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실상 화국봉을 후계자로 지목한다는 유언이었고 화국봉은 곧 당주석으로 선출됐다. 당시 모주석의 부인 강청과 장춘교등 이른바 「4인방」은 모주석이 자신들의 명령만 따르도록 유언했다고 퍼뜨렸으나 뒤늦게 유언이 조작됐다는 의심이 제기돼 결국 몰락하고 말았다.
레닌의 경우는 투병기간이 길어지면서 측근들에게 『빨리 죽게 해달라』고 간청했으나 그 때까지 당총서기직을 물려받지 못했던 스탈린이 이를 무시하고 계속 병상에 뉘여 놓았다는 설도 있다.
사회주의 국가지도자들은 이와 달리 보통 유언을 하지 않는 게 관례다. 통일원의 한 북한전문가는 『사회주의국가들은 자칫 권력투쟁에 휘말릴 것을 우려, 절대로 2인자를 키우지 않으며 죽으면서 후계자를 지목하는 등의 유언도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라며 『그러나 북한의 경우는 부자세습이라는 특이한 케이스인 만큼 모종의 유언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성은 당초 알려진 것 처럼 지난 1일 이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게 아니라 6일 광업부 간부들을 만나 경제지도사업에 나섰다가 7일께 갑자기 상태가 악화돼 병상에 누운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따라서 이때부터 8일 새벽2시 숨지기 전까지 김정일을 비롯, 측근들에게 유언을 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것이다. 그 이후 북한에서 돌아가는 일련의 상황들을 볼 때 당시 유언내용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세세한 것들까지 포함했을 가능성도 크다. 예컨대 사망 직후 34시간동안 발표를 미룬 채 향후 대책을 논의한 것을 비롯, 사망발표 뒤에는 일체의 비행훈련이나 부대이동을 자제한 점, 외국 조문사절단이나 외신기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한 점등이 모두 김일성의 유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북한은 11일까지 당중앙위원 및 후보위원들과 최고인민회의대의원들을 전원 소집,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비밀리에 강행한 것으로 보여 이것이 김정일의 당총비서직 승계를 조기에 마무리하라는 김일성의 마지막 「교시」였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북한 중앙방송은 지난 12일 김일성이 과거 『김정일을 중심으로 일심단결하고 그의 영도를 충성으로 받들어 나가라』고 말한 것이 곧 그의 「유훈」이었다고 주장했다. 한편으로는 이보다 훨씬 전에 김정일을 따로 불러 구두로 유언했을 수도 있으며 별도의 유언장 혹은 유서를 작성해 놓았을 가능성도 예견해 볼 수 있다.
북한 권부의 내부동향에 따라 김정일이 언젠가는 유언장을 공개할 수도 있으며 또 그 유언장 자체가 중국의 경우처럼 조작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홍윤오기자>홍윤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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