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김정일정권의 전략전술/허만 부산대교수·국제정치학(특별 기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김정일정권의 전략전술/허만 부산대교수·국제정치학(특별 기고)

입력
1994.07.15 00:00
0 0

1945년 소련군에 업혀 평양에 들어온 김일성은 소련군의 비호로 정권을 잡은 후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를 향해 약 반세기 동안 통치하다가 급기야 7월8일 급사하였다. 그는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기만 하면 기와집에다 쇠고깃국을 먹는 낙원을 만들 수 있다는 선전으로 북한동포들을 통치해 왔다. 김일성은 이 혁명을 위해 하나의 기본적 전략과 다양한 전술을 사용했다.

 「통일전선전략」이 기본적 전략으로 이는 사회주의 국가의 지도자면 누구나 혁명추진 초기 단계에서부터 적용하고 있는 기본적 원리다. 어떤 상황이 전개되어도 이 원리는 수정되거나 중단되지 않고 지속된다. 다양한 형태의 전술은 이 통일전선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도구들이다. 김일성은 사회주의 혁명을 완성하고 공산주의 단계로 접어들기 위해 통일전선전략에 여러 형태의 전술을 배합, 구사하여 왔지만 초보적인 사회주의 혁명도 제대로 북한땅에서 이룩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한국민의 민주주의 의식이 강력하였기 때문에 대남 혁명목표도 전연 달성하지 못했다.

 통일전선전략에는 평화적 방식과 무력적 방식이 병존하며 상황과 혁명의 추세에 따라 이 두가지가 뒤섞여 구사된다. 1948년 김구선생을 평양으로 초청해서 조작했던 4김회담등 그동안의 수많은 제안들은 평화적 방식에 속한다. 지난 6월 지미 카터 전미국대통령을 평양에 초청한 것도 평화적 방식의 통일전선전략에 기초한 것으로 이해된다. 결코 김일성이 카터와의 회담을 통해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핵무기를 포기하려 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아진다.  

 김일성은 핵무기개발이라는 기본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전술을 사용해왔다. 국제원자력기구의 특별사찰 또는 전면사찰을 지연시키고자 했던 지연전술, 세계적 여론과 압력을 의식하여 핵시설물에 대해 제한적 또는 부분적으로 일반사찰정도만을 허용했던 양동전술, 미국과의 고위급회담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던 연계전술, 핵재처리시설임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는데도 방사화학실험실에 불과하다고 선전하여 기만하려는 기만전술, 진부한 수단이지만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공갈과 협박을 서슴없이 구사하는 소위 공갈협박전술등 수많은 전술을 사용해왔다.

 남북정상회담은 단 한차례의 남북고위급회담에서 7월말에 열리기로 결정됐었다. 예상과 달리 너무 쉽게 결정된 이 회담이 예정대로 열리게 됐더라면 김일성과 김정일은 핵문제를 민족문제로 돌리면서 이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내세우며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하려 했을 것이다. 또 경수로 감속로 설치를 위한 지원을 미국과 함께 추진해줄 것을 주문할 가능성이 많았다. 이 역시 평화적 방식의 통일전선전략의 일환이며 동시에 합법적 전술인 것이다.

 김정일은 이러한 전략과 전술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벌써 20여년전부터 지도자 교육을 받으면서 이러한 전술과 전략을 배웠고, 오히려 이러한 전략과 전술들을 진두지휘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김정일은 이미 쓸모가 없어진 혁명의 개념에서 속히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개방 개혁을 과거처럼 도외시할 수 있는 입장에 처해 있지도 않다.

 어떻든 김일성의 사후에도 북한의 기본적 전략과 전술들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김정일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더 힘있게 지속될 가능성도 크다. 우리는 이러한 전략과 전술에 말려들지 않을 지혜를 짜내면서 핵문제를 민족의 사활과 연결시켜 보다 합리적으로 그리고 상호협력을 추구하면서 해결해야 하겠다. 그래서 협력적 평화공존의 틀을 만들어서 교류와 대화를 지속시킨다면 남북간의 당면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김일성이 없는 북한은 과거처럼 혁명개념에만 충실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핵무기화라는 정책도 과거처럼 그대로 추진하지는 못할 것이다. 근 반세기동안 약속해온 기와집에서 쇠고깃국을 먹는 노동자의 낙원건설은 차치하고라도 기본적인 경제생활을 확보해 주지 못한다면 불만과 고통이 쌓일 것이고 그것은 드디어 정치적 불만으로 표출될 것이다. 그 정치적 불만은 개방 개혁파들로 하여금 김정일 체제를 비판할 수 있는 입지를 제공할 지 모른다. 끝내 이같은 정치적 불만을 해소할 수 없을 때에는 구소련 동구에서 처럼 붕괴내지 자체 개혁등에 의해서 신사회주의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북한 정권의 불확실성이 완전히 제거되면 정상회담을 다시 추진하여야 한다. 1차 회담에서는 세가지 사실만을 인식시킨다면 일단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통일전선전략과 전술들은 이미 낡아서 쓸모없는 도구라는 사실, 둘째 핵무기 소유로 정권을 유지해보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 셋째 대남혁명은 한국민의 민주주의 의식의 성장과 민주주의체제의 착근으로 실현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