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정부가 김일성의 사망에 대해 조의를 표하거나 조문사절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일부 민주당의원들과 학생운동권의 주장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부영·임채정·이우정·남궁진·장영달·유준상의원등 6명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그같은 제안을 했고, 『6·25를 일으킨 전범의 사망에 조문이 웬 말이냐』는 거센 반발 속에 14일 같은 주장을 거듭했다. 그들의 발언요지를 읽어 보면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을 전제로 정상회담을 추진해온 것이 정부의 기본입장이므로 향후 남북관계를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라도 조의를 표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내용이다. 나는 그들의 의견에 분명히 반대하지만, 그들이 못할 말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김일성이라는 뇌관에 공포없이 접근하여 각자 다양한 의견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 어둡던 냉전의 터널에서 확실히 벗어났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북한에 대해서 항상 너그럽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너무 오랫동안 같은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일부 학생운동권에서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을 몰라라』라고 김일성을 흠모하는 것을 보면 정말 왜 그러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철의 장막 저편에서 북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던 시절, 그들에게 어떤 환상을 품는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당시 우리의 상황은 매우 암울했으므로 북한을 우리의 대안으로 꿈꾸는 것도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만천하에 모습을 드러내고, 세계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인민을 먹여 살리지 못해 스스로 항복한지 오래인데, 무슨 시대착오적인 고집인가. 「적의 적은 동지」라는 공식도 쓸모가 없어진 상황인데, 우리를 향해서는 그토록 비판적이면서 북한의 독재와 인권탄압에는 눈을 감는 이유가 무엇인가.
만약 당신이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행복할까. 하루에 골백번씩 어버이수령을 찬양해야 하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까막눈이고, 지도자를 선택할 수 없고, 국내조차 마음대로 여행할 수 없고, 그리고 배가 고프다면, 당신은 참을 수 있을까. 당신이 만일 순수한 열정에 불타는 운동가이고,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젊은이라면, 김일성을 찬양할게 아니라 북의 인민을 구해내는데 몸을 바치는게 옳다.
당신이 참을 수 없는 삶을 인민에게 강요하는 지도자를 찬양한다는 것은 억지고, 인민에 대한 모독이다. 북한 동포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광장에 꿇어 엎드려 통곡하는 그들도 무엇이 인간다운 삶인지를 생각할 줄 아는 현명한 한민족이다.
김일성 사망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분출하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다만 우리는 이번 논쟁을 성숙하게 발전시켜 김일성을 확실하게 정리하고 넘어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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