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방송은 단조롭기 그지없게 느껴진다. 「남북의 창」이나 「통일전망대」등이 초기에 호기심 때문에 관심을 끌었다가 금방 시들해진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단조로운 느낌이 드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방송의 화술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북한의 방송원들은 방송화술에 있어서 엄격한 교육을 거친다고 한다. 프로그램 장르별로 정형화된 화술이 있고 같은 프로그램 내에서도 내용에 따라 다른 말투를 쓰도록 되어 있다. 그 말투와 화술의 종류가 두꺼운 책 한 권의 두께가 될 정도로 다양하고 세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행이 천편일률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 이유는 정형화된 화술을 철저하게 구사하려면 방송인 개개인의 독특한 개성은 희생시킬 수밖에 없어서 기계적이고 형식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단조로움은 방송인들의 목소리에서 온다. 북한 방송인들의 목소리는 반드시 「맑은 소리」여야 한다. 소위 꾀꼬리 소리라고 우리가 부르는 이런 소리는 북한의 방송에서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지배적인 소리다. 반면 목을 조이는 거센 소리, 소위 허스키 보이스로 불리는 소리는 과거의 봉건통치자들을 비롯한 부정적 인물들을 형상할 때 쓰이는 것이라 북한방송에서 허스키 보이스의 아나운서나 가수를 볼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북한방송을 단조롭게 하는 것은 북한방송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 단일성일 것이다. 뉴스·논평·해설등에서 다큐멘터리 르포르타주, 생활·과학기술 정보에서 음악쇼 교예 TV드라마 코미디 게임 어린이프로 만화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장르별로 소재나 포맷이 다를지라도 그 주제에 있어서는 김부자가 그 중심고리가 된다. 모든 문제에 교시를 내려 주는 전지전능한 존재이며 사랑과 은혜로 보살펴 주는 부모와 같은 존재로서. 그것은 노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여서 장중한 슬라브풍의 군대합창곡 가사든, 88년에 등장한 보천보 전자악단의 반주로 서구풍의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노래하는 아름다운 인민배우 김광숙의 댄스곡풍의 노래가사든 예외가 없다.
북한의 주체이념은 강한 가부장적 가족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이것은 봉건주의와 일제 치하를 체험했을 뿐인 해방 무렵의 평범한 사람들, 문맹이 대부분이었던 이들에게 결코 이해가 쉽지 않은 사회주의 이념과 체제를 아주 간단히 이해시키고 친근감가는 대상으로 만드는 선전 선동술로 고안된 것인지도 모른다. 동양사회에서 어버이와 자식간의 구체적인 혈연관계 만큼 이해하기 쉽고 절대적인 관계도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국가차원으로 확대되니 이는 거의 종교적인 차원을 지니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많은 민중을 부모처럼 보살핀다는 것은 종교적인 차원에서나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세 기독교세계에서 모든 것이 신의 섭리였듯이 북한의 그것은 김부자의 섭리와 은혜로 표현된다. 그런데 기독교의 예수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예수처럼 초자연적인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신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상하고 자식사랑에 충만한 아버지로서의 구체적인 인격이 동시에 부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중심이라는 익명적인 지칭으로만 칭송되었을 뿐인 김정일은 80년 10월 이후 이름이 공식적으로 거명되며 이미지 메이킹에 들어가게 된다. 그 방식에 있어서는 김일성과 별다른 차별성을 보이지 않는다. 가족주의적 친밀감, 인민에 대한 자상함, 모든 문제에 대한 만능성등이 대체적인 내용이다. 1년전부터는 김정일을 가끔 아버지(어버이가 아니라)로 호칭하는 것이 방송에 등장하기도 했다. 80여세 되어 보이는 노인이 김정일아버지를 부르짖는 장면을 보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지만 김정일은 아버지로부터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연인의 이미지로까지 왔다갔다 하면서 약간의 일관성을 잃고 있기도 했다. 김정일에게 결여되어 있었던 신격을 보완하기 위함인지 87년부터는 느닷없이 김정일의 출생지가 백두산 언저리로 바뀌면서 그의 탄생을 전설화하는 전략이 구사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이 김일성이 가질 수 있는 전설적인 신비로움을 김정일에게 더해 주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근 50여년간 북한사회를 떠받쳐 주는데 큰 역할을 해온 상징술과 선전 선동술에 김정일이 여전히 의존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같은 신화가 되풀이될 수는 없을 것이며 더구나 오늘 날은 신화로 통치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것 같다. 신화의 주인공을 숭배하며 만족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고 오늘은 모두가 자신들이 신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알려진 것처럼 김정일이 선전 선동술에 진정 능한 존재라면 그것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며 결국 모두의 신화가 가능한 시대를 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름하여 실용주의노선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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