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문란 구체확인 어려워/여배우 성혜림과는 동거·결혼 엇갈려/장남 정남도 13세부터 「황태자수업」설 김정일의 부인이나 자녀들은 김정일 자신보다 더 베일에 가려져있다. 우선 그가 언제, 몇번 결혼했으며 부인과 자녀들은 몇명인지등 기본적인 사항 조차도 확인된 것은 하나도 없다.
따라서 그의 결혼과 직계가족에 대해서는 귀순자들이나 소련·중국등지의 북한 출신 인사들, 김정일을 만나본 극소수 인사등으로부터 전해들은 「추정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당국에 의하면 김정일은 66년과 73년 두차례 결혼을 했으며 세여자에게서 2남3녀를 두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64년 김일성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한 그는 66년 호위총국 호위과에 근무할 때 대학시절 연인으로 노문학부에 다니던 홍일천과 첫 결혼, 장녀 혜경을 낳았으나 71년께부터 노동당 문화예술부 부부장을 맡으면서 여배우나 무용수들과 바람을 피우고 부인에게 손찌검까지 일삼아 그해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는 이미 5살 연상의 평양시 예술단 소속이었던 미모의 여배우 성혜림(57·현재 평양시 중성동 거주 추정)과 열애에 빠져있었고 바로 그해 성혜림과 사이에 장남 정남(23)을 낳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혜림은 남한 출신으로 지난 48년 월북했으며 오빠 성일기씨(61)는 현재 서울에서 살고 있다. 성혜림과는 정식 결혼을 했는지 아니면 상당기간 동거만 했는지 확실치 않으나 둘은 결국 성격차이로 헤어진 것으로 돼있다. 또 장남 정남은 13세때부터 이른바 「황태자 수업」을 받아 왔으며 현재는 군의 요직을 맡고있다는 설과 김일성대학에 재학중이라는 설등 두가지가 있다.
73년 김정일은 두번째 정식 결혼을 했다. 상대는 현재 그의 부인인 김영숙(47). 그가 막 노동당의 조직사업과 선전선동사업을 전담하는 조직 및 사상담당비서로 선출됐을 때이다. 또 당시는 그가 김일성으로 부터 정식으로 후계자에 지목될 때 쯤이기도 했고 착실한 내조자를 물색해 왔던 것으로 알려져 중매결혼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녀는 혁명가 집안 출신으로 김일성대학을 졸업한뒤 노동당 선전선동부 타자수로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사람은 결혼 이듬해 딸 설송(20)을 낳았고 그 밑으로 1남1녀를 더 둔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숙은 현재 평양시 보통강구역 서장동의 관저에 살고 있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나머지 구체적인 면면은 여전히 안개속이다. 그의 가족들은 신변안전등을 이유로 다른 북한 특수층보다도 더 철저히 은폐돼있어 북한의 웬만한 고위인사들 조차도 그 내막을 자세히 모르는 것으로 돼있다.
다만 78년 납북돼 김정일과 비교적 가깝게 지내던 신상옥·최은희씨 부부는 「김정일왕국」이란 수기에서 『78년2월16일 그의 생일잔치에 초대돼 관저를 방문했을때 김영숙과 그의 일곱살 난 아들(정남)을 소개받은 적이 있다』며 『당시 김영숙은 손님을 상냥하게 맞고 직접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차려오는 전형적인 내조형 주부였다』고 술회했다. 특히 그자리에서 김정일은 『우리집사람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여편네란 집에서 아이 키우고 살림 잘하면 되는 거지요. 저 사람은 촌뜨기 입니다』고 말했다는 것. 김영숙은 지금까지 일체의 공식 직책이 없는 것으로 돼있으며 실제 이름이 김혜숙이란 설도 있다.
한편 최근 한 귀순자는 김정일이 본처외에 다수의 첩을 거느리고 있다고 증언하기도 했고 일본 산케이신문은 92년 무용가 출신의 김송죽(32)이 87년5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북한당국의 배려를 받아가며 비밀리에 김정일의 딸 백연(7)을 출산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하기도 했었다.<홍윤오기자>홍윤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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