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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과 중 지도부/한·중수교후 서먹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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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과 중 지도부/한·중수교후 서먹한 관계

입력
1994.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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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강경”-“우호훼손” 한때맞서/후계 인정하지만 앙금은 남아 김정일과 중국의 최고 실권자 등소평, 그리고 강택민을 비롯한 중국의 현 지도부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이 문제를 살피기에 앞서 먼저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혁명1세대로서의 김일성과 등소평과의 끈끈한 관계이다. 올 6월에 발행된 「등소평 사진집」에는 89년 11월5일 등소평이 강택민총서기, 이붕총리, 교석정치국상무위원을 대동하고 북경 기차역으로 나가 김일성을 직접 영접하는 사진이 들어 있다. 89년 11월5일은 등소평이 그의 마지막 공직인 당군사위 주석을 강택민총서기에게 넘겨주기 나흘 전이다.

 이 때가 등소평이 공직에서의 마지막 접대였으며 또 89년 6월 새로 구성된 지도부의 서열 1,2,3위의 인사를 모두 대동하고 기차역까지 직접 나가 영접한 사실을 놓고 볼 때 등소평의 김일성에 대한 「특별대우」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일은 등소평을 비롯한 중국지도자들과 이처럼 끈끈한 관계를 맺을 수도, 맺을 기회도 없었다. 김일성사망 이전에는 오히려 「차가운 관계」였다는게 정확한 표현이다.

 특히 한중수교 직후 김정일과 중국의 지도자들과의 관계는 악화될대로 악화되었다. 김정일은 양국간의 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해 방문한 중국의 대표단을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만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그러나 중국의 지도부는 김일성의 후계자로서 김정일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았다. 지난 1월15일 중국을 방문한 황장엽당비서에게 강택민중국주석은 김일성과 함께 김정일에게도 안부를 전해줄 것을 당부했다. 중국의 현 지도부가 비록 김정일과 「서먹한 관계」이지만 후계자로서의 그의 위치는 인정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중수교 몇년전까지만해도 김정일과 중국지도부와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김일성 역시 자신의 후계자와 중국친구들을 연결시키려 애썼다. 83년 6월 김정일은 호요방 당시 총서기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 등소평 이선염 조자양등과 만났으며 그해 9월에는 북한 건국 35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 중국대표단을 김정일이 직접 평양역으로 나가 영접했다. 84년 5월 북한을 방문한 호요방을 영접한 이도 김정일이었다. 그는 85년 5월 신의주를 방문한 호요방과 김일성과의 회담에, 89년 4월에는 조자양 당시 총서기와 김일성과의 평양대좌에도 배석했다.

 중국 지도부와의 유대를 지속하려는 김정일의 노력은 강택민총서기체제가 들어서면서부터는 무슨 이유때문인지 일단 주춤해졌다. 특히 92년 한중수교직후 중국에 대한 강경외교의 선봉에 선 것이 김정일이었으며 이에 맞대응한 사람은 이붕총리로 알려지고 있다. 대중강경외교를 구사하던 김정일은 93년 3월4일 급기야 교서를 통해 중국을 직접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사회주의 시장경제화를 「자본주의로 가는 길」이라고까지 매도했다. 이에 앞서 93년 2월초 이붕은 외교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북한이 더 이상 양국 우호관계를 훼손하는 행동을 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촉구하고 중국은 더 이상 북한과 새로운 정치·군사적 협의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골자로 한 대한반도 정책을 채택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북한과 중국과의 난기류는 93년 3월15일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를 계기로 호전되기 시작했지만 김일성이 대중외교의 전부를 챙기는 바람에 김정일과 중국의 현 지도부가 관계를 개선할 기회는 갖지 못했다. 특히 이붕총리가 지난 3월 전인대연설에서 중조관계를 「중한」관계로 잘못 읽는 사건도 있었다. 또 그가 지난 10일 독일 신문과의 회견에서 김정일에 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은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이붕총리가 김정일에 대한 앙금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는 증거로 볼 수도 있다.

 김정일은 그동안 강택민, 이붕총리를 비롯한 현 중국 지도부와 친밀한 관계를 쌓지 못했으며 대중강경외교를 주도하는 과정에서 등소평의 시장경제화추진을 간접적으로나마 매도하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비록 중국이 김정일을 후계자로 인정했다하더라도 그 것은 중국의 이익을 면밀히 저울질한 외교적 계산의 결과일뿐이다.<북경=유동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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