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남·북의 눈물(장명수칼럼:1696)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남·북의 눈물(장명수칼럼:1696)

입력
1994.07.13 00:00
0 0

 김일성이 사망한 후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다. 우는 사람은 북에만 있는게 아니라 남에도 있다. 김일성의 사망이 전해진 날, 서울의 국립묘지에서 어린애처럼 엉엉 우는 한 할머니가 있었다. 그 옆에는 할아버지 두분이 묘비를 쓰다듬으며 흐느끼고 있었다. 그들 삼남매는 6·25때 20살로 전사한 동생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누나는 울면서 『너를 죽인 김일성이가 어제 죽었단다…』라고 40년전 죽은 동생에게 일러주고 있었다.

 지난 며칠동안 국립묘지에는 참배객들이 많았다. 홀로 엎드려 흐느끼는 할머니, 말없이 묘비를 응시하는 할아버지, 꽃다발을 든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온 중년부부… 6·25때 희생된 아들, 남편, 형제, 아버지를 찾아온 그들은 망자와 함께 김일성의 죽음을 맞고 있었다. 그들은 전쟁으로 파괴됐던 수많은 가족의 비극, 40여년이 흘러도 멈추지 않는 통곡을 우리에게 일깨웠다.

 북에서는 「어버이 수령」을 잃은 2천만의 「고아」들이 거대한 김일성동상앞에 무릎꿇고 엎드려 울고 있다. 구한말 고종황제가 승하했을 때 수만인파가 덕수궁 대한문앞에 엎드려 통곡하는 사진을 떠올리면서 『북한은 아직 왕조시대』라고 새삼 혀를 차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때는 황제를 잃은 슬픔뿐 아니라 풍전등화같은 나라의 운명과 황제 독살설에대한 울분이 들끓고 있었다. 그러니 오늘 북한에서 울부짖는 사람들은 왕조의 신민수준을 넘어 사교집단의 광신도에 가깝다.

 일일이 식량을 배급해 주고, 집과 직장을 주고, 일거일동에 지침을 내려주던 교주를 잃은 신도들은 집단 히스테리 증세를 보이고 있다. 어린이들이 몸부림치는 모습은 더욱 섬뜩하다. 저러다가 어버이를 따라 가겠다는 자살자가 속출하지 않을까라는 우려와 혐오감이 솟구친다. 그러다가 우리는 가슴을 에이는 연민에 빠지게 된다.

 그들이 김일성교의 광신도가 된것은 그들탓이 아니다. 그들은 포악한 교주의 포로로서 세계와 철저하게 격리된채 까마득한 과거의 한 시점에 머물러 살아왔다. 그들중 상당수가 진심으로 어버이수령을 존경했다해도 그것은 이성적인 사리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묘한 최면에 빠진 결과였다. 최면에 걸려들지 않은 사람들도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들이 목숨을 부지하는 길은 자진해서 최면에 빠짐으로써 개인숭배에 대한 저항감을 줄여나가는 길밖에 없었다.

 남·북의 눈물은 너무나 거리가 멀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것은 남의 눈물이 북에 대한 연민으로 바뀌어 김일성의 최면에서 깨어나는 인민들을 따듯하게 감싸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너를 죽인 김일성이 죽었단다』라고 흐느끼던 누나의 마음으로 김일성의 또다른 희생자들인 그들을 도와야 한다. 김일성광장에 꿇어앉은 사람들에게 혀를 차지말고, 그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편집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