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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권력기반 위해 일부손질” 전망/김정일,어떻게 재정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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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권력기반 위해 일부손질” 전망/김정일,어떻게 재정립할까

입력
1994.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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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지도력·업적창출 필요 인식/「틀」 유지한채론 곤란 판단할듯/경제난·고립 탈피위해서도 재검토 불가피 김일성주석사후 북한의 통치이데올로기는 어떻게 정립될 것인가. 북한은 사회주의 공산국가지만, 그 사상적 기반을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두지 않고 김일성주체사상이라는 독자적인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다.

 주체사상이 김정일체제에 계승돼 계속 북한의 통치이념이 될지, 아니면 스탈린이나 모택동 사후처럼 격하될지 아직은 속단할 수 없다. 그러나 주체사상의 등장배경과 공산국가들의 이데올로기 변화가 권력변동에 영향 받았음을 감안하면, 주체사상의 운명 역시 후계구도와 맞물려 있다.

 이를 역으로 해석하면, 주체사상이 후계권력을 정하기보다는 새로운 권력의 성격이 주체사상의 진로를 결정하리라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김정일체제가 구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당분간 주체사상의 변화여부는 김정일의 노선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이 현상고수에 주력할지, 개방과 변화를 모색할지는 분명치 않다. 설령 현상고수를 선택할지라도 김정일이 죽은 김일성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주체사상의 틀을 그대로 온존한채 통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권력의 속성상 새 권력은 전정권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비판하면서 정당성을 확보해나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정일이 권력기반 강화차원에서 최소한 자신의 업적과 지도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주체사상을 변형시킬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해진다.

 다른 공산국가들의 권력이양과정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해주고있다. 소련의 스탈린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 고르바초프도 모두 새로운 통치이데올로기를 만들었고 중국의 모택동 사후 등소평이 권력을 장악한 후 시도한 첫 작업이 통치이념의 변화였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후계자인 김정일이 김일성의 아들인데다 주체사상의 체계화를 주도적으로 담당해왔다는 점에서 이들 구공산국가들처럼 급격한 이데올로기의 변화를 추진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하지만 김정일이 경제난 국제고립등 북한의 곤경을 타개하지 못할 경우 안팎의 도전과 권력투쟁을 자초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시도할 것이고, 이는 자연 통치이념의 변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주체사상의 변화 폭. 이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주체사상의 탄생배경과 진행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2차대전후만해도 소련의 위성국가로 출발했기 때문에 소련식 마르크스―레닌주의, 즉 스탈린주의를 차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당시에는 주체사상의 「주」자도 나오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던 북한이 독자적인 이데올로기 개발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한 시기는 소련에서 스탈린 격하운동이 심화되던 1955년 무렵이다. 김주석이 55년12월「당선전선동대회」에서 주체문제를 거론했고, 그 이유는 권력투쟁 때문이었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고 6·25전쟁 휴전을 계기로 국내파 연안파 소련파의 도전이 거세게 전개되자 김일성은 전략상 필요에 의해 주체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특히 56년 2월의 소련공산당 20차대회에서 스탈린주의가 흐루시초프에 의해 신랄한 비판을 받으면서 스탈린 격하운동이 일어나자 김일성은 자신이 신봉해온 스탈린주의를 새롭게 변형시킬 수밖에 없게됐다.

 이런 배경하에서 김일성은 55년 「당 사상사업에서의 주체」문제를 거론했고, 이를 기반으로 56년 8월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소련파와 연안파등의 반대파를 「종파주의자」로 낙인찍으며 숙청했다.

 이어 소련의 스탈린격하운동이 중·소간 알력을 빚고 60년대로 넘어가면서 중·소분쟁으로까지 확산되자 북한은 마르크스·레닌주의나 스탈린주의로는 더이상 「사회주의 형제국가」들의 대립을 설명할 수 없게 됐다. 스탈린주의자인 김일성은 언제 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게 됐다. 때문에 김주석이 추락하는 스탈린주의를 버리고 새 이념을 만드는 것은 필연이었다.

 권력투쟁의 산물이었던 주체의 문제는 시일이 지나면서 이론적으로 다듬어지고 체계화되며 북한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자리잡게됐다. 김일성은 소련의 위성국통제가 약화된 66년「당중앙위 조직부·선전선동부」연설에서 주체사상의 골간을 밝혔다. 북한은 이어 72년 사회주의헌법에 주체사상을 명문화했으며 73년 이를 철저히 구현하기 위해 3대혁명소조를 조직했다. 이 3대혁명소조는 김정일에 의해 주도돼 김정일이 후계자로 부상하는 결정적인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80년대 들어 북한은 주체사상을 김일성 자연인의 권위에 연결시키는 「김일성주의」를 내세우기 시작했고 거의 유일신을 받드는 식의 종교국가로 변신해 갔다.

 이처럼 김일성 부자의 권력강화와 맞물려 변화된 주체사상은 「사람이 상황을 지배하는 주인」이라는 인간중심의 세계관을 골간으로 하고 있다. 주체사상은 사람의 자주성을 강조하되, 개인이 자주성있는 집단(근로인민대중)에 속할 경우에만 자주성과 창조성을 갖는다는 입장이다. 혁명 역시 사회모순이 아닌 근로인민대중의 의지로 이루어진다는 논리이다. 주체사상은 그러나 『대중이 정치적으로 자각, 혁명의지를 가지려면 위대한 수령의 영도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 김일성 1인 지배를 정당화했다. 세부적으로 주체사상은 「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 등의 내용을 갖추고 있으나 궁극적으로 김일성숭배를 지향하고있다.

 결국 주체사상의 인간중심주의는 김일성통치를 정당화하는 사상적 도구로 쓰였다고 단정할 수 있다. 또한 공산주의의 몰락에서 입증됐듯이 견제세력과 반대세력의 부인은 정치의 역동성을 상실시켰다는 점에서 주체사상은 북한의 고립과 낙후를 자초한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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