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아래 펼쳐진 채색풍광… 회색시가… 인적드문 “북한의 창” 노과마을을 지나면서 강폭은 제법 넓어지고 강 양안으로는 험준한 산세 대신 옥수수등속의 밭작물이 자라는 야트막한 구릉지대가 나타난다. 두만강이 비로소 강다워지는 이곳 상류 끝언저리에 북한땅 무산이 자리잡고 있다.
함북무산은 추정매장량이 13억톤이나 되는 동양최대의 철광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진 곳이다. 명성답게 도시 왼편 샛강 성수천을 따라 버려진 버력(잡석)더미가 족히 서울의 남산크기는 넘어보일 만큼 엄청나고 시가지를 온통 흔들어 놓는 발파음이 간단없이 이어진다. 무산은 백두산 언저리에서 베어진 원목들이 무산선, 백무선등의 산림철도와 뗏목를 통해 모아지고 가공되는 두만강변의 최대 목재집산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산이 각별한 것은 그런 것들 때문이 아니다. 무산땅이 넓고 낮은 개활지인 반면 두만강 이편 중국쪽은 거칠고 높은 언덕과 산등성이로 이루어져 있어 강변 언덕에 올라 서면 무산시 전체가 한 눈에 들어 온다. 더욱이 두만강이라는 것도 여기서는 한 달음에 뛰어 건널만한 너비여서 강변쪽 동네는 집안이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이거니와 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도시 남쪽끝까지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전형적인 북한의 도시와 주민의 생활모습을 볼 양이면 이 강안에서 하룻밤쯤 묵으면 그만이다. 혹시 이 강변에 선 사람이 실향민이라면 무산출신이 아니더라도 틀림없이 북받치는 망향의 설움에 눈물을 가누기 힘들 것이다. 말하자면 무산은 비교적 분식되지 않은 북한을 볼 수 있는 창과도 같은 곳이다.
무산은 우리로 따지자면 인구 10만∼20만가량의 지방 소도시정도로 그리 크지는 않으나 샛강을 낀 철광에다 두만강변의 대규모 목재창과 제재소, 낮은 구릉지대에 구획이 잘 된 주택지등이 상당히 조화롭게 짜여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꽤 넓은 터를 차지한 시가지의 중앙 기차역에서는 연신 증기기관차의 연기가 뿜어져 올라가고 외곽 산등성이마다 살구밭이 펼쳐져 5월의 제철만난 연분홍꽃들이 흡사 구름처럼 흐드러졌다. 여느 광산촌과 달리 자연풍광과 시가지가 그림같이 어우러진 곳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첫 인상은 곧 우울한 잿빛으로 바뀌어버린다. 도시 전체에서 아무런 빛깔이나 표정이 느껴지지 않는 탓이다. 두, 세칸쯤 돼 보이는 회색의 낡은 단층주택들이 같은 기계에서 찍어낸듯 똑같은 모습으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고 지붕마다 뽑혀 올라간 검은 굴뚝도 마치 사열대의 어깨총 자세마냥 일사불란하다. 돌출한 4∼5층짜리 큰 건물 몇동은 김일성노작학습당이거나 노동당사등인데 어김없이 「우리식대로 살아나가자!」.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따위 구호의 붉은 색이 무채색배경 때문에 한층 생경해 보일 뿐이다.
무엇보다 기이한 것은 광산노동자들의 거친 활력은 고사하고 거리분위기에서 살아 움직인다는 느낌이 전혀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대낮에도 활동하는 사람이 드물고 간혹 눈에 뛰는 행인들의 걸음걸이도 맥빠진듯 늘어져 보인다. 발파음과 기적, 간간이 들리는 골목 확성기소리 외엔 거의 생활소음이 없으며 못 하나 박아도 들릴 만큼 가까운 강변 제재소조차 오직 적요할 뿐이다.
문득 학교를 파한 듯한 꼬마 네댓명이 강둑을 쪼르르 내려와 나뭇가지를 꺾어 만든 낚싯대를 물에 들이댄다. 아이들의 깨알같은 웃음이 터지고서야 비로소 도시에 핏기가 돌고 저녁무렵 공설운동장같은 곳에 주민 한 무리가 잠시 모였다 흩어지기도 하면서 어수선해진다. 그러나 수선거림도 잠시, 일몰과 함께 무산은 그대로 칠흑같은 적막에 빠져든다. 당사등 몇곳을 제외하고는 도시 어디서도 한 점 불빛을 찾기 어려운 침묵속에 다시 묻혀 버리는 것이다.
박제된 잿빛 도시. 무산풍경을 떠올릴 때마다 이 씁쓸한 이미지가 살아난다.
◎「홍콩시장」/중국장사꾼 건너가 생필품판매… 북변경도시의 외제품 시장
「홍콩」이라는 이름은 남북한사람을 막론하고 신기하고 좋은 곳이라는 느낌을 주는 모양이다.
무산왼편 철광산밑으로 북한주민들이 줄지어 드나드는 작은 독립가옥이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홍콩시장」이다. 중국의 보따리장사꾼들이 건너가 생필품을 파는 일종의 상설 외제품시장으로 없는게 없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이곳에 나오는 물건은 주로 옷가지와 식료품이며 품목이 많지 않은데다 질도 보잘 것 없다는 것이 현지 중국인들의 말이다. 실제로 두만강 유역 중국쪽 도시에는 내의, 점퍼등 홍콩시장용 의류만 만드는 전문공장들이 있는데 내수용으로는 팔 수 없을 만큼 값싼 제품만 만든다는 것이다. 북한주민들의 기본생필품 부족으로 수요가 상당하긴 해도 구매력이 낮은 점을 고려한 것이다. 대개 물물교환형태로 이루어지는 거래에서 중국상인들은 북한의 명태나 말린 낙지(오징어까지 이르는 총칭이다)등 해산물을 받아 간다.
국경에서 5리 이내는 중국인에 한해 사증발급을 면제해주므로 보따리장사꾼들은 통행증만으로 비교적 자유롭게 강을 건너 다닌다. 현지인들은 이런 식으로 두만강의 6개 해관을 통해 북한 변경도시의 홍콩시장에 물건을 내다 파는 장사꾼이 하루 1천명은 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들중 상당수가 조선족인데다 북한에 친척이 있어 홍콩시장은 단순한 물품거래 외에 안부를 교환하고 선물을 전하는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한 중국조선족(50)은 『무산에 사는 육순의 누나에게 식량을 전해주곤 하는데 강냉이죽으로 간신히 연명하는 생활이 너무 비참해 갈 때마다 울면서 돌아온다』며 눈시울을 또 붉혔다.
□특별취재반
권주훈부장대우(사진부)
이준희기자(사회부)
이재열기자(기획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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