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오랜 역사를 통한 당쟁, 사화등에서 얻은 교훈 탓인지는 몰라도 부편부당이 미덕처럼 생리화한 것같다. 어떤 의견이나 사고를 어느 한 쪽으로 기울이는 것을 삼가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좋게 말해서 균형감각이 있다거나 중립적 사고를 가진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처신을 하는 인사들은 고매한 인격자로서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들 자신도 그렇게 함으로써 원숙한 인격자로 자처하기도 하는 것을 더러 보게 된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어떤 사건이나 문제가 있을 때 따끔하게 한마디씩 던지고 지나가는 일언거사가 경원되는 사례를 보게 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어찌 된 영문인지, 해방 그리고 분단된 상태나마 건국한지 반세기가 경과했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과도기적 분위기가 가시지 않고 선진국과 다른 여러가지 정치·경제·사회적 사건이나 문제들이 끊임없이 야기되는 것을 목격해 오고 있다. 그동안 독주적으로 치달아 온 경제성장속도에 비해 사회적 성숙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닌가고도 느껴지는 사례들이 아닌가 한다. 그러한 현상들이 종합적 국가발전의 진통과정 또는 조정국면에서 오는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면 그만일지 모르나, 성숙된 사회풍토의 정착화가 못내 아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최근에도 국민들의 우려를 자아내는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철도·지하철·중요산업이 파업이라는 극한적인 사태까지 몰고 왔던 노사분규, 소강상태인듯 했다가 재연된 학원사태, 정부와 민간 사이의 행정권 행사를 둘러싼 갈등, 여야간의 각종 사안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등을 보아 왔다.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는 물론 개인의 시각차나 사회적 신념 또는 소속의식이나 이해관계등에 따라서 견해를 달리할 수가 있다. 그것은 물론 민주시민의 특전인 사상이나 사고의 자유에 속하는 일일 것이다. 또한 그럼으로써 오히려 다양한 의견과 견해를 종합·수렴해서 큰 흐름의 여론을 집약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경우는 그 사안에 따라 분명한 시와 비의 차이가 있는데도, 양시논 또는 양비논에 의해서 핵심을 이탈하여 두루뭉수리 얼버무리는 논조를 보는 일이다. 앞에서 들었던 사례들을 중심으로 해서 보아도 노와 사, 학교와 학생, 정부의 특정 부서와 민간의 이해당사자, 여당과 야당등 각각 양쪽에 대해서 모두 공평(?)하게 양시 또는 양비의 논평을 하고 있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 논평자는 지자, 전문가, 여러 직능층, 언론등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데카르트는 이 세상에서 사람 사이에 가장 형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것은 양지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럴 것만도 같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사람 사이에 나타나는 실제 행태가 각각 다른 것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양식의 질양이 달라서가 아니라 살아가는 데서의 전략적 태도가 다른데 연유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모든 사안은 당사자 쌍방에게 모두 부분적인 잘잘못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원래의 양식에 비추어 보면 어떠한 사태나 사안에 대해서도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시비곡직의 판단이 나오게 마련일 것이다. 다삭결원이를 바탕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요체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투표자들이 어떤 직책의 사람을 선출하거나 어떤 정책안의 선택을 하기 위해 투표하는 경우, 만약 투표자들이 모든 후보자와 제시된 정책안에 대해서 똑같은 선택의 투표를 한다면 그 투표는 전혀 의미를 갖지 못한다. 다수의 양식에 의한 선택적 결정을 하고자 하는 것이 민주주의일 것이다.
많은 사람, 직능층, 부문등이 양시논·양비논만을 제시한다면, 그 사회에서는 사회적 선택을 위한 자(척)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비우열을 제시한다 해서 냉정한 판단의 기초를 결여한 편파적·아전인수적 아집은 양식에 바탕을 둔 선택안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미온적 양시·양비논만도 못할 수가 있다.
국가와 사회운영은 그것이 생산적이기 위해서는, 어차피 부정적인 것을 배제하고 긍정적인 것이 꾸준히 추구되고 긍정적인 것 중에서도 선택적일 수밖에 없는 과정이 된다. 그 선택이 도덕적이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기 위해서는 객관적 양식에 바탕을 둔 의견과 여론이 필수적인 것이 된다.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인사, 계층, 부문은 사회적 사안 또는 문제들에 대해서 진정한 양식에 입각한 활발한 시비논을 펴며 생산적 의견 논평을 개진함으로써 격조높은 사회적 판단사회적 합의사회적 선택을 가능케 하도록 하는 더욱 큰 기여가 있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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