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학부 졸업 식견·외국물정 밝아/“성격모호속 폐쇄성은 탈피” 중평 북한의 권력체제가 김정일당비서겸 국방위원장 후계구도로 굳혀져 감에 따라 그의 대외관과 국제감각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북한정권이 고립된 채 베일에 가려져 있는데다 김정일개인에 대한 정보가 적어 북한의 대외정책향방에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외국언론들은 김주석은 독재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려깊고 철학적이며 예측가능한 인물로 묘사하는 반면, 김정일은 수수께끼에 휩싸인 「난폭한 성격의 위험한 괴짜」정도로 묘사해왔다. 일부 언론은 또 공산주의 사회에서 최초로 권력을 상속한 김정일은 참을성이 없고 제멋대로이며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외에 영화·오페라·스피드광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북한에서 출판된 서적에도 김정일의 성격을「독특하고 통쾌하고 빠르다」고 묘사하고 있다.
특히 워싱턴 포스트는 최근 김정일은 지난 30년간 해외여행을 한두차례밖에 하지 않았고 카터전미대통령등 고위 방문객들과의 요담도 기피해왔다고 지적하며 『그가 현실과 유리된 환상의 세계에 사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낳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국내의 북한전문가들도 김정일에 대해 『그는 후계자수업은 받았으나 국제무대에는 나타난 적이 없어 외교적 소양은 부족할 것』이라고 보고있다.
그러나 많은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김정일의 괴팍한 성격은 인정하면서도 그가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김주석과는 달리 어느정도 폐쇄성에서 벗어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북한내 최고명문인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구소련등 외국의 물정에도 밝다는 점을 들어 그가 김일성보다는 국제감각에서 비교우위에 있다고 관측하고 있다.
김정일은 적어도 80년대이후 북한의 대외정책을 주도해왔기때문에 김은 권력유지를 위해서도 폐쇄·보수로 급선회하기보다는 미일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대남관계도 개선하려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아웅산사건 KAL기 폭파등 대남테러와 북한핵개발등 외교적인 강경책을 주도해온 것으로 알려져왔다.
한편 김정일은 84년 9월 채택된 합영법과 수출확대정책방침에 따른 93년 외국인투자관련법 제정등에도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강온양면의 이미지가 중복된다.따라서 그가 집권하면 『정권보호와 경제난타개등을 위해서도 중국식의 개방정책을 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김정일이 해외순방등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것도 콤플렉스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를 전면에 내세우고 반대세력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배려한 것이었기때문에 권력을 승계할 경우 아버지 보다 자주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김정일의 사생활에서도 국제감각을 읽을수 있는 대목들이 있다.그는 미국의 CNN방송을 즐겨 보고 젊은이들에게 디스코춤과 장발을 허용하는등 비교적 개방적인 분위기를 좋아한다고 그를 만난사람들은 전한다.
구소련의 외무차관을 지낸 미하일 카피차씨는 최근 『김정일은 비교적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상대방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라며 『그가 권력을 승계받으면 북한정책이 달라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김달현전국가계획위원장 황장엽당비서등 측근들의 면면을 봐도 김정일이 비교적 개방적 인물이라는 관측을 불러 일으킨다.이들은 이론과 실무능력을 겸비한 개방파의 테크노크라트로 김달현은 지난 92년 북경에서 우리 기업인들과 만나 나진 선봉자유무역지대의 본격개방을 위한 법적제도마련을 약속한 바 있다. 나진 선봉 자유무역지대는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졌다.
북한은 토지임대법 외국투자은행법등을 제정하는등 93년 10월 이후 개방을 위한 제도정비를 서둘러 왔는데 이는 경제개방작업을 가속화하려는 김정일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다.<이종수기자>이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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