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치곤 공교롭게 6월만남 김일성 북한주석의 사망소식에 가장 아쉬움을 표명한 미국인은 아마도 카터전미국대통령일 것이다. 카터는 지난 6월 평양을 방문, 김주석을 만나 전쟁위기가 감돌던 한반도에 대화테이블을 마련한 당사자이다.
따라서 이후 남북, 북미간에 대화노력이 잘 진행됐더라면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냉전지대에 평화를 가져온 공로로 노벨평화상도 기대해볼만 했다. 하지만 이같은 기대는 카터에게 『10년은 더 일할것』이라고 장담했던 김주석의 사망으로 일단 난관에 부닥치고 말았다.
김주석의 사망은 79년에 카터 당시 미국대통령과 만난뒤 4개월도 못돼 시해됐던 박정희전대통령의 운명과 덧붙여 기묘한 연관성을 생각케한다.
각각 18년, 49년이란 장기간을 철권통치했던 두사람은 모두 카터와의 회담을 통해 어려웠던 국면을 타개해 보고자했다. 두사람은 또 회담당시에는 원하던대로 주한미군 계속주둔, 국제제재 철회라는 카드를 얻었다. 하지만 카드를 제대로 활용해 보기도 전에 두사람은 카터를 만난 바로 그해에 유명을 달리했다. 박전대통령은 4개월도 못돼 시해됐고 김주석은 20여일만에 죽었다.
카터와 만난 달도 공교롭게 모두 6월이다. 「기연」이다.
카터를 만났을때 박전대통령은 야당가와 대학가에서 노골화되는 유신체제에 대한 반대움직임과 남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국제여론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김주석 또한 식량부족으로 상징되는 경제난과 핵문제로 인한 국제제재 움직임 때문에 안팎으로 힘겨운 시기를 맞고 있었다.
박전대통령은 당시 카터로부터 주한미군 계속주둔이란 보장을 받았지만 카터가 심각하게 문제삼았던 인권문제는 결국 부마항쟁등으로 폭발되며 그의 몰락을 가져왔다. 김주석역시 카터로부터 미국주도하의 대북제재 움직임 중단이라는 선물을 얻어냈지만 남북정상회담 준비와 급변하는 국제상황을 타개하기위한 고심등이 노쇠한 그의 건강을 해쳤을지도 모른다.<이동국기자>이동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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