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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의 조의/한기봉 파리특파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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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의 조의/한기봉 파리특파원(기자의 눈)

입력
1994.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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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날이 밝자마자 제네바에서 북미고위급회담을 취재하고 있는 내외신 보도진은 미국대표부건물로 몰려갔다. 8일에 이어 이날 계속될 예정인 회담이 김일성주석의 사망으로 과연 이뤄질 수 있을지가 관심사였다. 1백여명의 보도진은 미국대표부 정문 앞에서 김주석의 사망을 주제로 한창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떤 공식적인 발표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때 미국대표부 대변인이 나와 기자들에게 성명서를 배포했다. 회담이 연기됐다는 성명이려니 생각하고 읽어보았다.

 『미국국민을 대신해 나는 김일성주석의 사망에 대해 북한국민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 우리는 그가 북미회담을 재개시킨 지도력에 감사하며 회담이 계속되기를 희망한다』

 성명은 뜻밖에도 클린턴대통령의 조문이었다. 미국대표부는 조금 지나 이날 회담이 북한의 요청으로 연기됐다고 발표했다.

 돌아오는 차속에서 북한과 미국의 관계, 클린턴의 조문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혼돈에 잠시 빠졌다. 한 인간의 죽음에 인간적 애도감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분명히 북한은 아직도 미국의 적국이다. 북한은 테러리스트국가로 분류돼 있다. 수많은 미국과 한국국민이 북한이 일으킨 전쟁에서 희생됐으며 휴전선에서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만약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이 사망했다면 미국정부가 애도할 수 있을까.

 김주석은 핵문제를 일으켜 2년이 넘게 클린턴을 괴롭히고 한달전만 해도 유엔제재를 논의할 만큼 사태를 악화시켜온 사람이다. 북미회담의 재개는 핵카드를 손에 쥔 북한의 전략적 게임이자 정치적 흥정의 성격이지 김주석의 지도력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이 지도력이라면 심하게 말하면 미국과 한국은 그 지도력에 지금까지 당해온 셈이다.

 미국정부의 심심한 조문은 김주석의 사망에 환호하는 적지않은 한국국민의 감정에 어떻게 투영될 것인가. 클린턴의 조문내용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아무 말도 않는것이 좋았을지도 모른다.<제네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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