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오진우·박성철 후견그룹/당·정·군 혁명소조인맥 “버팀목” 김일성사후 김정일의 후계체제를 뒷받침할 지지인맥은 누구인가.
김일성은 생전 김정일 주변을 노년, 장년, 청년층으로 복잡하게 이루어진 인맥으로 겹겹이 싸왔다. 김일성의 항일유격대시절 대원이었던 70대이상의 빨치산1세대는 김정일체제를 보장하는 후견그룹이며 대부분 60대인 혁명2세대, 또는 만경대혁명학원1기생들은 그를 좌우에서 옹위하고 있다.
70년대중반 당시 대학생들로 김정일이 전국에 전위대로 파견했던 3대혁명소조출신 10만여명은 현재 장년층이 돼 당·정·군 각분야의 중간그룹이 되고 있다.
세대별로 겹겹이 늘어선 김정일의 인맥들은 다시 친인척관계로 그물처럼 얽혀 물샐틈 없이 완생돼 보이는게 현재의 북한체제이다.
빨치산1세대중 최상위급은 현재 서열2위인 오진우인민무력부장(당정치국 상무위원). 그는 김일성이 생전 후계체제의 안보를 위탁한 핵심인물으로 추정되고 있다. 80년대초에는 김정일로의 세습을 반대하는 인물로 지목되기도 했으나 84년 교통사고에서 김정일이 생명을 건져준 이후 그와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92년 원수로 승진할 당시 계급장을 달아준 것은 바로 군계급상 같은 원수계급인 김정일이었다.
최광총참모장(정치국위원)은 지난해12월 서열이 8위로 승격됐으며 63년 부터 총참모장을 지내다 반혁명음모를 묵인했다는 이유로 69년 탄광노동자로 숙청됐으나 변함없는 충성심으로 김부자를 감격시켜 88년 총참모장에 복귀한 고지식한 인물. 이밖에 항일유격대 경력을 지닌 인사들중 군현역에 남아 있는 인사는 이을설호위총국국장, 백학임사회안전부장, 김봉율인민무력부부장, 이두익중앙군사위원, 최인덕 김일성군사종합대총장, 김광진인민무력부부장(이상 차수급)과 김철만국방위원(대장).
군외에도 박성철부주석등 행정부쪽에 진출한 빨치산1세대도 김정일후계자 부상에 협조한 원로급이다.
당의 지지인맥으로는 김일성시대에 등용된 계응태, 황장엽, 김중인,서관히등을 우선 꼽을 수 있다. 만주에서 대학을 졸업한 계응태는 정보수집에 탁월한 능력이 있고 국가보위부,사회안전부등 공안계통을 장악하고 있어 말년 김일성의 비서실장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그룹중 주목되는 것은 황장엽. 그는 김정일의 김일성대학 재학시절 철학교수로 주체사상의 사실상 창시자이며 대남사업에도 깊게 관여했고 최근에는 중국과의 외교적 창구역할을 했던 2대에 걸친 핵심인물.
북한에서 혁명2세로 불리는 인맥은 빨치산 유자녀들을 위한 특수학교인 만경대혁명학원의 출신자들로 나이는 50∼60대이나 모두 김정일이 당을 장악한 후 발탁한 인사들. 빨치산의 유자녀이며 만경대혁명학원 1기생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한성룡, 전병호등 당비서와 군의 오극열대장. 전·한·오는 유년시절 김일성의 집에서 김정일과 함께 기거한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현재는 각각의 분야에서 실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당비서는 체코 프라하공대에서 기계공학을 배운뒤 주로 중공업분야에서, 전당비서도 모스크바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으나 주로 당조직분야에서 김정일을 보좌해왔다.
오극열은 혁명전사 오중흡의 아들로 50세때인 79년 군참모장으로 벼락출세 했으나 오진우와 군현대화노선을 놓고 알력을 빚다가 해임된뒤 당민방위부장, 대남사업부장등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두남당군사위원, 김강환전당군사부장등은 오극열과 함께 군내부의 혁명2세대 3총사로 불리는 김정일의 지지기반이다. 이밖에 김정일을 대리해 군을 통제하고 인사에 영향을 미쳐온 이봉원총정치국부국장등은 김정일체제하에서의 차기 군참모장으로 꼽히고 있다.<유승우기자>유승우기자>
◎친인척도 대거 포진/매제 장성택 “실세중 실세”/김영주·김용순·황장엽 등 핵심 30여명
김정일의 친인척 그룹은 당중앙위 위원급이상 핵심층에만 30여명이 포진해 있다. 이들을 대표하는 자는 김일성의 친동생인 김영주부주석(당정치국원). 한때 북한의 제2인자였던 그는 74년 김정일의 후계자 내정과 함께 권력무대에서 모습을 감추었다가 18년만인 지난93년 당서열6위의 고위직으로 복귀했다.
김정일과 일종의 정적관계에 놓여있던 그는 이제 친족의 큰 어른으로 적자로의 상속을 위해 집안을 단속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것이다.
22년 평남 대동군출생인 그는 김일성의 10살차이 막내동생으로 김일성이 빨치산활동을 하는 동안 천애고아가 된 채 만주벌판을 헤맸다. 그와 같은 세대인 혁명원로들이 혁혁한 항일투쟁 경력을 자랑하는 반면 그는 도리어 일제시대 관동군에 부역하는 등 치욕스러운 경력이 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그는 곧 해방직후 모스크바에 유학한 뒤 60년부터 당조직부장을 맡으면서 북한권력 전반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 현재도 당·정·군의 고위인사중 그의 손때가 묻지 않은 인사가 없다고 할 정도다. 권력서열2위인 오진우도 그앞에서는 주눅이 든다고 한다.
복권후 그의 역할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의 총책이 됐다는 설, 대남관계사업을 맡았다는 설등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의 친인척은 빨치산1·2세, 만경대학원출신 당엘리트, 경제관료, 군소장층등에 광범위하게 퍼져 북한권력구조의 중첩상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일과 인척관계에 있는 주요인물로는 김일성의 이종동생인 강성산정무원총리, 삼촌 김형록의 사위인 박성철부주석, 오촌조카사위인 김달현전부총리, 처동생인 김용순당비서, 조카사위인 황장엽당비서, 고종사촌 남편인 양형섭최고인민회의 의장, 사위인 장성택당부장, 장녀인 김경희당부장, 고종제인 김정우대외경제사업부 부부장, 차남인 김평일핀란드대사, 김창주부총리등이다.
이중 장성택당근로단체사업부 부장 겸 3대혁명소조 부장은 김정일의 친인척중 실세이면서 3대혁명소조인맥을 대표하는 실세중의 실세. 김정일의 측근인 그가 김정일집권후 어떤 직책을 맡게 될 지가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3대혁명소조란 김정일이 지난73년 정권수립을 위한 친위대성격으로 대학생등 미혼남녀 20∼50명씩을 한조로 해 각 일선기관에 파견했던 일종의 정풍운동단체. 이 당시 지도자급은 현재 장년층으로 북한 권력기관 깊숙이 침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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