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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방송「김정일각하」찬양 돌변/김일성사망…긴장의 휴전선 도라관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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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방송「김정일각하」찬양 돌변/김일성사망…긴장의 휴전선 도라관측소

입력
1994.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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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지역 사람 미동없어 “유령마을”/외신기자만 40여명몰려 동정살피기 취재열기/민통선 실향민들 “정말 죽긴죽었나”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다. 평소 한시도 쉬지 않고 떠들어대던 북한민요 방송이나 『미제국주의자들이…』로 시작하는 정치선전도 낮12시가 지나서는 단 한마디도 들리지 않는다. 사람이 들어가 청소를 할 정도로 큰 대형 확성기는 침묵을 지키기 시작한지 1시간도 넘었다.

 9일 하오3시30분께 경기 파주군 장단면 남방한계선에 있는 도라관측소. 눈앞에 빤히 보이는 북한땅에 전혀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마을 기정동에 걸려있는 가로 30, 세로 15의 대형 인공기는 원래 높이인 1백58 보다 약 5는 내려 걸려 있었다. 조용한 가운데 우리 병사들은 북한측 확성기에 초점을 맞추며 잔뜩 긴장해 있다. 정규방송은 멈췄지만 간헐적으로 추모곡과 추도문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우리측 장병이 숨가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한다. 『낮12시5분께 대남방송이 갑자기 중단되더니 슬픈 곡조의 애도곡이 깔리며 느닷없이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김일성원수께서 서거하셨다」는 방송이 나왔다. 5분뒤 인공기도 내려갔다. 12시30분을 넘어서자 농사일을 하던 북한마을 금암골의 주민들도 모두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로는 움직이는 것은 하나도 없다』

 망원경에 눈을 대보니 역시 북한마을은 유령마을같다. 보이는 것은 덩그렇게 서 있는 건물뿐이다. 그 주위로 짙은 초록으로 변한 산야와 그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만이 망원경에 잡힌다. 한참 위쪽 산꼭대기의 북한군초소에서는 방송요원으로 보이는 북한병사 3∼4명이 잠깐씩 보였다 금방 사라진다.

 간헐적으로 확성기에서는 북한중앙방송에 방송된 내용이 되풀이된다. 그러나 웅웅거리기만 할 뿐 정확히 알아듣기 힘들다. 관측소로 불어닥치는 바람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측 병사는 『평소보다 북한 확성기의 출력이 상당히 낮다』고 설명한다.

 하오4시를 넘어서자 대남방송의 내용이 바뀌었다. 「김정일각하」라는 말과 함께 「명장중의 명장」「장군중의 장군」등 김정일을 찬양하는 소리 일색이다. 『친애하는 김정일각하는 비범한 용병술로 조선인민군을 무적강군으로… 비범한 예지와 담력, 세련된 무술로 조선을 강력한 사회주의 국가로 빛내주는 김정일각하가…』 시간이 흐르며 김정일찬양 대남방송은 평소대로 반미, 반제로 흐른다. 『철의 담력과 의지, 천재적 지략으로 미국과 서방의 공갈을 한 칼에 쓸어버리시며…』

 북한측은 하오5시45분께 일단 조기를 내린 뒤 곧 가로 14 세로 2 크기의 흑색천을 인공기위에 매달아 철탑 정상에서 15 아래지점에 다시 게양했다.

 이날 도라관측소에는 외신기자가 40여명이나 몰렸다. 북한지역뿐 아니라 우리측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취재열기가 대단하다. 또 전주 군산 정읍등지에서 온 국민학생 1백60명과 일반관람객 2백여명이 취재진과 엉켜 혼잡했다. 관측소에서 2아래에 있는 제2땅굴을 먼저 보고 오는 것이 원래 관람순서인데 이날은 「김일성 사후의 북한」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아 이곳이 단연 1순위 방문지였다.

 도라전망대는 원래 하오 6시면 문을 닫지만 이날은 결국 시간을 넘기고 말았다. 관람객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북한땅을 계속 지켜봤지만 하오7시가 다 될때까지도 북한땅은 여전히 침묵에 잠겨 있었다.<파주=원일희기자>

 북위 37도48분, 북의 서쪽 최남단인 황해도 연백군과 경기도(북한행정구역으로는 황해도) 개풍군을 강 하나 사이에 둔 경기도쪽 최북단지역인 경기강화도 양사면 교산2리. 면 전체가 민통선 안쪽에 속해 있어 해병여단의 삼엄한 통제가 이루어지는 이곳은 황해도 연백, 경기도 개풍지역에서 월남한 주민들이 주로 모여 사는 곳이다.

 북한쪽과는 직선거리로 1·3에 불과해 이곳 주민들은 TV에서 북한비판방송만 나오면 북한쪽에서 방해전파를 쏘아대는 바람에 8만원짜리 특수안테나를 별도로 설치하고 방송을 본다. 이곳 실향민들은 1년에 두세차례 군부대의 특별허가로 감시초소(OP)에 올라가 두고 온 고향산천을 구경하는 것을 명절보다 더 귀한 연중행사로 치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김일성의 사망소식이 알려지기 하루전인 8일부터 『북한에 무슨 일이 있긴 있는 것같다』는 낌새를 어느 정도 알아차렸다고 한다. 저녁마다 마을 전체에 울려펴져 TV마저 제대로 볼 수 없게 하던 대남방송이 8일부터 갑자기 뚝 끊겨 주민들은 또 무슨 일인가 하고 의아해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9일 정오 무렵부터 우리 방송이 『김일성주석이 8일 새벽 2시에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온종일 보도하자 『이번엔 정말 죽긴 죽었나』하며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짓다 삼삼오오 유연국씨(70·교산2리 324)집에 모여들었다. 유할아버지는 1·4후퇴때 월남한 실향민으로 그 집은 마을의 사랑방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9일 어스름한 저녁무렵 유할아버지집에 모여든 홍진문씨(72)와 광철이 아버지, 재광이 아버지는 수박과 삶은 쇠고기안주에 4년묵은 인삼주 주안상을 차려 놓고 이날 알려진 깜짝 놀랄 소식을 놓고 말잔치를 벌였다. 광철이 아버지는 북한초소에 조기(조기)가 걸려 있더라는 철산리 동네주민얘기를 소개하며 얘기흥을 돋운다.

 『난 거짓말같어, 지난번(86년 11월 김일성사망 오보)에도 그랬잖어』 유씨가 아무래도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운을 뗐다. 황해도 연백군 석산면이 고향인 유씨는 지금 살아 계시면 1백세가 넘었을 노모를 떠올리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정말일까, 정말이면 고향갈 날이 가까워진 걸까』

 『죽으면 뭘혀, 정상회담이나 하고 가든지 하지』 『지난번 신문에 김일성이가 70세이상 실향민들 고향방문하도록 해준다고 카터가 그러던데 말여』 황해도사투리가 짙은 억양으로 맞받는 홍씨는 개풍군 대성면 신죽리가 고향이다.

 홍씨는 술이 불콰해진 얼굴로 연신 「다 틀려버린」 정상회담 얘기에만 열을 올린다. 애석해 하는 표정이 벌개진 얼굴에 서려 있다.<강화=서의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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