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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너머 눈시린 금강 손에 잡힐듯(휴전선 600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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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너머 눈시린 금강 손에 잡힐듯(휴전선 600리:상)

입력
1994.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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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명사십리·무심한 산짐승 분단상흔 덮고 국토의 허리가 잘린지 어언 반세기. 27일이면 휴전 41년이 되지만 휴전선 2백40는 그저 견고하다. 이곳이 세계적 생태계 보전지역이자 한반도 최대의 무공해지역이라는 사실에서 단절의 세월을 더 실감하게 된다.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달라져야 할 분단의 현장을 찾아가 본다.【편집자주】

 38선에서 북으로 84㎞, 강원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 동해안 절벽 위의 통일전망대. 북위 38도35분, 동경 128도 35분. 민간인통제선을 8㎞나 넘어 왔다. 현역군인이 아니면 더 갈 수 없다. 금강산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보려고 멀리 북쪽의 높은 고지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새벽 4시30분. 해는 뜨지 않았는데 벌써 주위가 훤하다. 안내장교가 군복을 내주며 갈아 입으라고 한다. 북한군 관측초소(GP)가 5백여밖에 안돼 돌발사고가 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92년엔 북한군이 소총을 마구 쏘아대 우리 관측소건물에 총알자국을 낸 적도 있다.

 비포장언덕길에 시달린지 얼마 되지 않아 「여기부터 비무장지대」라는 대형표지판이 나타난다. 「지뢰지대」경고판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산야를 뒤덮은 녹음과 길 한가운데로 뛰어가는 산짐승의 모습에 취해 비무장지대임을 잠시 잊는 동안 지프는 2.6㎞나 올라갔다.

 육군 사단 관측소. 남방한계선 철책에서 불과 스무 걸음 거리다. 해발 3백여가 넘는 전망대에 서니 발 아래로 탁 트인 개활지가 신천지처럼 나타난다.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보이는 것마다 황홀하게 아름답다. 왼쪽을 보니 금강산이 떠오르는 아침해를 받으며 경이로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해발 1천5백96m의 채하봉이 바로 눈앞이다. 그 뒤로 금강산 최고봉인 해발 1천6백38m의 비로봉이 운해에 싸여 꼭대기만 보인다. 채하봉 왼쪽이 신금강, 그 뒤쪽에 비로봉, 일출봉, 월출봉등이 도열한 곳이 내금강이다.

 외금강은 손을 뻗으면 닿을 것같다. 아홉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는 구선봉은 낙타등같은 모습이며 그 바로 앞의 호수가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이 서린 감호호수다. 호수 한 가운데서 고기잡는 북한병사의 손짓·발짓까지 망원경에 잡힌다. 식량이 부족한 북한군은 종종 이 호수에서 끼닛거리를 장만한다고 한다. 가슴팍까지 물이 차는 것으로 미루어 수심은 1m정도 되는 것같다.

 오른쪽으로는 해금강이 뻗어 있다. 말이 바다로 뛰어드는 형상인 말무리반도가 삐죽이 나와 있고 외추도등 여러 개의 섬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해금강 남쪽의 명사십리는 해변에 소금을 뿌린듯 하얗다. 명사십리는 원래 원산이 유명하지만 이곳도 그에 못지 않다고 한다.

 북방한계선 저 너머로 북한군 351고지가 보인다. 원래 해발 3백56m였던 것이 6·25때 폭격으로 5m나 깎여 나가 해발 3백51m로 낮아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지의 모습은 위에서 보면 말발굽모양이라 「앵카고지」로도 불린다. 북한측도 90년에 이 고지에 전망대를 만들었다. 외빈이 오면 전망대에서 남측을 조망하고 절경인 해금강을 감상하게 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는 설명이다. 고지 좌우에는 「미군철거」 「세금없는 나라」 「사랑정치」등 북의 대형 구호판이 걸려 있다.

 눈 앞에 빤히 보이는 북한군초소의 대형 스피커에서 대남방송이 시작됐다.

 「군밤타령」등 민요가 흘러나오더니 『미국놈들이…』하는 원색적인 선전이 이어진다. 우리측 스피커에서도 이장희의 노래 「한 잔의 추억」이 시작돼 이내 남북의 소리가 엉키면서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게 돼버린다.

 해금강 내륙 평야지대는 광복 당시 양양에서 금강산자락을 거쳐 원산까지 가는 동해북부선 철도의 중간지점인 초두역 자리였다. 남북회담이 열려 통일의 꿈이 커져가던 72년에 남북체육공원 조성을 위해 양측이 지뢰를 제거한 덕분에 이곳은 휴전선 1백55마일중 유일한 무지뢰지역이 됐다. 6공때는 북방정책으로 관광개발의 꿈이 영글던 적도 있다.

 발아래 개활지는 녹색 비단을 펼친 듯하다. 병사들은 노루, 멧돼지, 고라니, 사슴은 물론 3m가 넘는 구렁이도 보았다고 말한다. 개활지 중간중간은 아직도 시커멓다. 매년 봄 북측이 시야확보를 위해 불을 지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불길을 막기 위해 우리측도 맞불을 놓기 마련이고 그 사이 3백발 이상의 지뢰가 폭발한다고 한다. 한 병사는 『매년 같은 곳에 불이 나는데 그때마다 지뢰가 터지니 얼마나 지뢰가 많은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양측이 매설한 지뢰도 있지만 대부분 6·25당시 미군이 항공기로 뿌려놓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 지뢰 때문에 통일이 되더라도 비무장지대 출입은 상당기간 불가능할 것같다.

 그러나 비무장지대의 생명력은 끈질기다. 완전히 타버렸다던 평야에 초목은 다시 온 세상을 뒤덮을듯 무성하다. 한 병사는 『1년내내 폐허와 타버린 나무만 볼 줄 알았는데 금방 나무가 우거져 신비롭다』고 말한다.

 1994년 7월의 휴전선. 전쟁의 상처와 혈흔, 지뢰를 절경에 감춘채 초록은 눈이 아프게 진하다.<글·원일희기자 사진·최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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