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단축·연봉삭감 등 부당 재계약 강요/“우파 정치적 음모”해석/정씨 “예술적 이유없이는 굴복 못한다”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단 음악감독겸 상임지휘자 정명훈씨(42)가 최근 극장측으로부터 사실상 퇴진을 요구하는 재계약을 강요받아 귀추가 주목된다.정씨의 한 측근에 의하면 극장측의 이번 재계약 제시는 정씨가 92년 체결한 기존의 계약에 보장된 2000년까지의 임기를 3년 단축하고 연봉도 절반수준으로 감축하며 음악감독으로서의 권한을 크게 약화시키는 것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씨는 『극장측이 정치적 음모를 깔고 이번 일을 진행시키고 있다』며 『2년전 합의한 계약을 번복한 처사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횡포』라고 분개하고 있다. 정씨는 또『아무런 예술적 이유없이 정치적 압력을 행사해 내쫓으려 하는 극장측의 처사에 굴복할 수 없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법정투쟁도 가능하지만 바스티유의 예술적 성장을 이끈 음악인으로서 예술적인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음악계는 극장측의 이번 처사를 정씨를 사임시키려는 의도로 해석하고 있다. 정씨는 『내년 초 부임예정인 총감독 예정자 위그 갈씨(제네바 오페라 극장 총감독)가 바스티유를 자기식으로 장악하려는 시도』라고 비난했다.
또한 지난 총선에서 참패한 사회당의 몰락으로 사회당이 건립한 이 오페라단이 우파의 집요한 공격대상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정씨가 정치적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극장측이 정씨에게 밝힌 표면적인 이유는 적자누적과 재정난이지만 오랫 동안의 좌우파간의 대립이 근본 이유라는 것이다. 89년 바스티유 개관 당시 우파측이 내정했던 음악감독 바렌보임이 좌파에 의해 이번과 같은 방법으로 제외되고 정씨가 바통을 넘겨 받았던 것이다. 이번에는 거꾸로 지난해 3월 총선에서 우파가 승리한 후 우파에 의해 똑같은 방식으로 정씨가 제거될 위험에 처해 있는 셈이다. 우파의 발라뒤르총리는 지난 2월 사회당정권 시절 취임했던 이 오페라단의 피에르 베르제총감독을 퇴임시키고 후임으로 위그 갈씨를 내정했으며 각 분야의 책임자를 교체시킨 바 있다. 위그 갈씨는 『개관 이래 1천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해결하지 않으면 취임하지 않겠다』며 배수진을 치고 현재 총감독대행인 크루젤씨를 앞세워 지난해 겨울부터 감원을 통한 체제 정비에 들어갔다.
프랑스 혁명 2백주년의 해인 89년 파리에서 개관한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의 초대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정씨는 오는 8월로 임기 5년이 만료되나 92년말 2000년까지 임기를 보장하는 계약을 체결했었다.
정씨에게 닥친 이번 재계약 강요는 프랑스 내에서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 음악계에 큰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서화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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