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농사에 관한 한, 나의 동료들은 더러 나를 측은하게 여기고 있다. 나는 딸과 아들 오누이를 두었다. 위로 딸은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원없이 하고 있지만 아들은 고등학교로 만족했다.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 건성으로 대입시험은 봤지만, 아들은 아예 대학에 갈 생각이 없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세살반 때 부모를 따라 귀국했고 중3 때 1년간은 가족을 따라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다. 이런 경험들이 세상에 대한 그의 호기심을 끝없이 자극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들은 학교와 가정에서 갈등의 연속이었다. 하기 싫은 공부지만 대학을 나오지 않고는 저 아이가 장차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가 걱정되었고 남들과 같이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에게는 그것이 지옥과 같은 생활이었던 모양이다.
결국 고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부모 위주로 생각하기 보다는 아들의 의사를 적극 수용하고 밀어주기로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 우리 가정에는 평화가 찾아들었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독자적인 사업을 해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는 아들은 고교를 졸업한 후 1년반 정도 일하다가 지금은 군복무 중이다. 입대하면서 집에 남겨놓은 두툼한 파일에 그가 짧은 직장생활에서 얻는 지식과 장래에 유용하게 쓸만한 노하우를 엄청난 분량으로 정리해놓은 것을 보고 나는 지금까지 내 아들을 잘못 판단했구나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훈련소에서 보내온 첫 편지로 특공대로 배치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전해왔을 때, 나는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고된 훈련과 엄한 기율로 정평이 나 있는 특수부대지만 젊은이들이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다질 수 있는 최선의 기회라고 생각되었다. 다행히도 그런 부대로 배치받아 꿋꿋하게 근무하고 있는 아들이 대견스럽고 낙하산을 타고 하늘을 가르며 뛰어내릴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오히려 자랑스럽기만 하다.
대학교육의 현장에서 젊은이들을 항상 접하고 있지만 아들은 나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교훈을 던져주었다. 우리의 교육문제 및 청소년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부모네들의 사고의 전환이 요구된다는 점을.<이문웅·서울대교수·인류학>이문웅·서울대교수·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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