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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작은마을은 북한땅인데…(두만강: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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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작은마을은 북한땅인데…(두만강:3)

입력
1994.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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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굳은 북주민… 멋쩍게 끝난 첫만남 중국쪽 국경마을인 숭선, 노과등을 거쳐 함경북도 무산까지를 두만강의 상류로 잡을 수 있다. 강의 전체 길이로 보아 대략 첫 3분의 1 쯤되는 구간이다. 여기까지는 강폭이 넓은 곳도 고작 10 안쪽이며 바짓단을 두어번 감아접기만 하면 옷을 적시지 않고도 건널 수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아직 강이라기보다는 우리 시골 어디서나 친숙한 마을하천 정도의 모습이다.

 김일성낚시터를 떠난 외줄기길은 곧 물길과 헤어져 하늘을 가린 삼림지대로 접어든다. 달리는 것이 내내 미덥지 않은 낡은 일제 도요타지프 속에서 두어시간 시달리고 나서야 다시 강줄기를 만난다. 강 양안은 깎아 지른 산세가 대칭을 이룬 절경이다. 초가가 50호 남짓 되는 첫 강변마을 대동촌을 지나면서부터 비로소 강은 원시자연의 모습을 버리고 인간의 삶이 기대는 생활의 터로 바뀌기 시작한다.

 대동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좁은 강위에 나무다리가 엉성하게 걸려 있고 다리중앙에는 철문이 양편을 가르고 있다. 북한의 원목이 넘어오는 곳이다. 정식통상로인 해관이 아닌 탓에 이름도 없는 곳이지만 교역량은 상당하다는 안내인의 설명이다. 북한산 원목은 여기서 옥수수등 중국산 곡물로 교환된다. 다리에서 20여 아래쪽에 있는 북한산 원목을 쌓아두는 목재집하장에서 강을 막 건너와 트럭에서 나무를 부리는 북한인부 서너명과 마주쳤다. 국방색 인민모와 검은 상의에 말라서 광대뼈가 불거진 얼굴이 완강하게 굳어 있다. 담배를 권하며 『어디서 왔느냐』고 말을 붙여보았으나 경계의 눈초리만 보낼뿐 끝내 대거리하려 하지 않았다. 

 두만강을 향하면서부터 오랫동안 기다려온 북한주민과의 첫 만남은 이렇듯 간단하고도 멋쩍게 끝나버렸다. 

 이후로도 동해에 이르는 곳까지 강변의 북한땅은 늘 손에 잡힐듯 가까웠지만 바라보는 것 이상의 틈입을 결코 허용치 않았다. 두만강은 중국인들에게나 의지하고 더불어 사는 물일뿐 우리에게는 여전히 단절의 경계선인 것이다.

 북한측 지류인 서두수가 합쳐지는 물목 어귀에 숭선향소재지인 고성리가 있다. 향은 우리의 움정도 되는 곳으로 번듯한 기와집이 섞여 1백호가 넘는 꽤 큰 마을이다. 이곳에 해관이 있고 건너편 북한 삼장리나루와는 허술한 다리로 이어져 있다. 납작한 밑바닥을 드러낸채 나루터에 누워 있는 녹슨 폐철선은 얼마전 중국의 단속이 강화되기 이전까지 허약한 목재가교를 피해 북한에서 밀수승용차를 실어나르던 배다. 밀수라도 해서 살아가야 하는 북한의 현실은 강언덕에 올라섰을 때 더욱 확연해졌다.

 해관뒤편의 마을 골목마다 대부분 흰색인 일제 중고승용차들이 단속이 허술해지기를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곁 절벽중간 콘크리트호의 총안(총안)이 풍기는 살벌함에 대비되어 그런지 승용차들의 광채는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허세처럼 보였다.         

 숭선을 떠나 노과를 거쳐 무산에 닿는 강에는 유난히 낚시꾼과 천렵하는 이들이 많다. 꺽지, 버들치따위의 민물고기를 잡아 살아가는 직업적 어부들이다. 하루종일 강물에 발을 담그고 그물과 뜰채와 씨름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마리당 30전(한화 30원가량)에 하루 1백마리씩 내다 판다니 15년이상된 공무원월급 3백원(한화 3만원상당)에 비하면 대단한 수입이다.

 강가에 비닐텐트와 아궁이까지 만들어 놓고 눌러 사는 스무살난 조선족청년은 자주 북한쪽 기슭으로 올라가서 그물을 치는데 두 발을 다 디디면 월경죄로 처벌받지만 한 발만 걸치면 「일없다」(괜찮다)고 한다. 그에게는 국경보다 물고기가 더 중요하다.

 두만강에서 낚시꾼을 볼 수 있는 푸른 물은 겨우 여기까지였다. ◎북한의 차 밀수/외제승용차 공해서 받아 중국에 밀매 “돈벌이”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주도 연길은 자동차 전시장이라고 할만하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비포장길을 다니는 차들 중에는 뜻밖에도 벤츠, 볼보, 링컨, 캐딜락같은 세계적 명차들이 많다. 가장 많고 인기있는 외제차는 일제로 대부분 중고차지만 도요타의 렉서스같은 최신형도 쉽게 눈에 뛰며 그랜저, 포텐샤를 비롯한 국산차도 거의 전부를 만날 수 있다.

 합작기업의 업무용으로 들여온 것등을 제외하면 이 많은 외제승용차의 태반이 밀수품이며 그것도 대부분 북한을 통해 들어온 것이다. 자동차밀수는 북한고위층이 관할하는 대성무역상사가 손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해의 공해상에서 일본인들로부터 넘겨 받아 두만강 압록강의 해관등이 있는 국경마을로 들여보낸다는 것이다. 현지 중국인은 『주로 차령 5∼10년쯤 되는 차들』이라며 『북한은 대당 1만달러 내외의 이익을 남긴다』고 말했다.

 한해 1만대를 넘기도 했다는 외제승용차의 밀반입은 올들어 급격히 줄어들었다. 밀수를 묵인 내지 방조하다시피 해온 중국이 지난해 11월부터 강변에 무장경찰을 별도로 배치, 강력단속을 시작한 때문이다. 그렇다고 밀수가 근절될 것으로 보는 이는 별로 없다. 북한의 경제사정이 그렇고 자본주의 물건에 맛들인 중국인들의 만만찮은 수요도 밀수를 부추기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강폭이 좁고 인적이 드문 두만강상류가 밀수현장으로 주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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