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 공군창설요원… 모스크바서 훈련중 순직/러시아서 봉환은 최초/어제 국립묘지에 안장 1920년대 모스크바하늘을 날며 조국광복의 웅지를 폈던 한국최초의 공군조종사가 67년만에 한줌의 유해로 고국의 품에 안겼다.
상해 임시정부의 공군창설요원으로 모스크바 항공학교에서 비행훈련중 1927년 8월31일 순국했던 독립운동가 김공집선생의 유해가 4일 하오 1시30분 대한항공편으로 김포공항을 통해 환국한 것이다.
김선생의 장손 종근씨(미국거주)와 김승곤광복회장등 50여명이 봉영한 고인의 유해는 서울동작동 국립묘지로 봉송돼 하오4시30분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됐다. 안장식에는 이충길국가보훈처장관과 고인의 모교인 오산고학생 2백여명이 참석, 유지를 기렸다.
이보훈처장은 추모사에서 『이역만리 모스크바땅에 묻히셨던 선생을 67년이 지난 오늘에야 고국으로 모시게 돼 후손으로서 면목이 없다』며 『이제부터라도 선생의 유지를 부끄럽지 않게 이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상해임시정부는 1924년 공군을 창설하기 위해 김선생을 모스크바 항공학교에 파견했다. 김선생은 이 학교에서 3년동안 파일럿훈련을 받은 뒤 1927년 졸업, 교관으로 임명됐으나 같은해 8월31일 훈련기가 추락, 이국땅에서 32세의 생을 마감했다. 1895년 평북정주에서 태어난 김선생은 3·1운동직후 검거령을 피해 만주로 망명, 항일군사훈련을 지휘하던 이탁선생휘하에 들어가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폈다.
27비밀결사대원으로 중국 심양에서 폭탄을 제조하던 그는 1920년 비행술을 배우기 위해 상해에 갔다가 도산 안창호선생을 만나 광동군관학교를 졸업한뒤 흥사단에서도 활약했다. 불의의 사고로 애기와 함께 산화한 김선생은 모스크바 근교 세르프흡에 있는 레닌의 붉은 혁명 당시 희생자 묘역에 잠들어 있었다.
김선생의 유해환국은 모스크바거주 한인교포들이 한·러국교수립 이후 우리정부에 탄원해 추진돼 왔다.
해외에서 순국한 애국지사의 유해봉환은 46년 윤봉길의사등 3의사 환국이후 모두 33인에 달하나 러시아에서의 봉환은 이번이 처음이다.【정덕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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