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아직도 국제정치무대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려 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완숙한 동반관계를 추구하며 보스니아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중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또한 유동적인 구소연방 공화국의 안정을 위해 러시아군대를 파견하는 한편, 세계적인 핵비확산문제에 대해서도 미국과 함께 정치적 책임을 공유하려 한다. 안드레이 코지레프러시아외무장관이 북핵문제와 관련, 미국이 일방적으로 작성한 안보리 제재초안에 대한 지지의사를 철회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모스크바는 현재 북한과 긴밀하거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대북영향력의 고삐는 결코 놓치고 싶지않은 것이다. 구소련시절이긴 하지만 사실상 북한에 핵시설을 설치했고 양국은 아직도 활발한 무역과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때 러시아는 유엔의 이름을 건 대북제재를 관철시키려는 미국과 일본·한국의 공조체제를 지지하고 싶지 않았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을 위반했다는 명백한 증거를 포착할때 비로소 마지막 수단으로 제재를 고려할 수 있다는게 러시아정부의 공식입장이다.
러시아측의 이같은 입장은 매우 온건한 것으로 어찌보면 미국의 그것과 다를바 없다. 대북제재의 몇몇 수단은 이미 러시아정부도 지지했던 게 사실이다.
북한의 모험적 행동을 거북스러워하는 러시아가 한국측을 동정하는 사실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러시아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믿지 않지만 여하튼 지리적으로 근접한 북한과의 관계를 일단 접어두고 있다.
모스크바는 사실 북한같이 원시적인 전제주의 정권을 다루는 법을 알고 있다. 사실 북한지도자의 행동에선 논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이탈하겠다는 위협은 미국으로부터 자국의 주권을 인정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김일성부자의 관심은 국제사회의 물질적 지원에 쏠려있는 듯하다. 북한은 경제발전을 위한 재정적 지원을 서방측으로부터 얻어내려는 심산이다.
러시아 대외정보부는 북한핵문제가 고조된 이후 한반도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서방의 첩보기관과도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러시아의 한 정보전문가는 40년간 휴전상태였던 한반도의 전쟁발발가능성에 대해 『지금까지 우리 정보를 토대로 할때 남북한 그 어느쪽도 전쟁을 도발하려는 조짐은 없다』고 말했다.
지미 카터전미대통령의 최근 북한방문으로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싼 국제적 긴장이 어느정도 해소되자 클린턴대통령은 그간 추진해오던 제재책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카터의 방북시 김일성이 제의한 제안을 신중히 받아들이면서 김일성의 속셈에 대한 의심을 떨쳐버리려 노력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이 경수로지원과 북미고위급회담에서 한반도 문제를 일괄타결짓는데 동의한다면 핵개발계획을 동결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카터전대통령 방북이후 북한과의 대화재개가 급속히 이루어짐에 따라 협상전략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미관리들은 북한핵문제가 대화분위기로 급선회한 직후 백악관으로 북한전문가들을 초청, 그들의 조언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참석자들은 그러나 미행정부의 조급했던 제재추진과 평양에 이끌려다니는 무기력을 동시에 성토했을 뿐 상황변화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미국 호주 캐나다 일본 한국등 5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지난달 태평양에서 한달동안 실시된 림팩94 훈련은 북한에 대한 해상봉쇄에 중점을 두었다.
미 제3함대 사령관은 진주만 기자회견에서 함정 57척과 2백대의 비행기가 동원된 이 훈련은 북한 함대를 저지하고 공군과 해군특수부대의 공격을 무력화하는데 주된 목표를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북한핵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에 따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정부는 김영삼대통령의 러시아방문때 전달받은 한국전 관련 극비문서의 공개등 북한을 자극하는 행동을 자제하고 있다.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제재조치가 취해질 경우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에서 완전탈퇴하는등 극히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아래 제재에 반대해왔다.
러시아는 이같은 모든 문제를 토의하기 위한 관련국과 관련기관이 모두 참가하는 국제회의 개최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정리=이상원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