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남북관계는 현재 위기속의 소강상태에 놓여있다. 북한의 핵무기개발과 IAEA사찰거부가 원인이 된 한반도의 뜨거운 긴장상태의 수위가 잠시나마 상당히 저하되고 대결보다 대화에 의한 평화적 해결분위기가 상승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통일을 향한 남북관계의 호전이 여러가지 가정에 의존하고 있는한 한반도는 위기에 당면해 있다고 볼수 있다. 여기에서 위기라는 표현은 여러가지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동시에 개선과 발전을 위한 좋은 기회도 잠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릇된 방법으로 난국돌파를 시도하다 실패할 때 극단적으로는 제2의 전쟁까지 갈 수도 있고 또 국내정치에도 큰 파란을 초래할 수도 있을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차제에 우리 정부가 탁월한 위기관리능력을 발휘해 주기를 바라고 또 국민으로서는 정부의 노력을 적절히 떠받쳐 주어야 할 입장에 있다. 안정된 사회질서속에서 절대다수의 국민이 단합된 목소리로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성원하는 것은 성공의 기본조건이 된다.
2주일전까지만 해도 북한측은 극렬한 감정적 발언으로 전쟁분위기를 조성하였고 여기에 대비해 우리측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미 카터전미국대통령이 북한의 초청에 따라 돌연 평양을 방문, 김일성주석과 국제정세와 미국의 입장등에 대해 의견교환을 한뒤 김주석은 유화적 태도를 보였다. 그 결과 그동안의 대결이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쪽으로 방향이 전환되었고 소강상태가 성립되었다.
필자는 카터전대통령이 김주석에 대해 어느정도 강경하게 경고를 하였는지 또 어떠한 설득방법을 썼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카터전대통령은 클린턴대통령과 함께 미국집권당인 민주당소속 정치인이며 또 다같이 남부 주지사출신으로 선후배관계에 있는등 개인적 친분이 두터운 것이 사실이다. 카터전대통령은 대통령재직중 논쟁이 많던 주한미군의 철수를 고집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카터전대통령은 김주석에게 있어서는 국제적인 선전효과를 이용하면서 난국돌파의 대책을 모색하는 방법으로 평양에 초청해 환대할 가치가 있는 미국요인으로서는 알맞는 존재였다.
카터전대통령은 방북을 결심한뒤 준비과정에서 미국정부로부터 비공식적으로 상당한 브리핑을 받았으며 또 귀국한뒤에는 즉시 백악관과 접촉했다. 그리고 수일뒤에는 클린턴대통령이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카터전대통령이 전한 김주석의 제의를 독자적으로 확인한 결과에 입각, 북한입장의 변경을 환영하고 한반도에서의 긴장퇴조에 만족을 표시했다. 이같은 일련의 사실은 카터전대통령의 평양·서울 방문이 단순한 사적 여행이 아니었다고 볼 수 있고 그는 결과적으로 외교에 허약하다는 비난을 받아온 클린턴대통령에게 도움을 준 셈이 됐다. 이러한 배경 아래 북미3단계 회담이 8일로 예정되어 있고 또 한반도에서는 사상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25일 평양에서 열린다. 국민들은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여기에는 신선한 변화에 대한 희망과 기대와 과거의 쓰라린 경험에 따른 회의와 일말의 불안감이 혼재돼 있다.
북한이 왜 돌연 대화쪽으로 변신했을까? 이 변화는 시간을 벌기 위한 북한의 공산주의 수법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8일의 북미 회담결과가 중요한데 남북정상회담은 과연 실현될 것인가? 정상회담의 장소는 판문점도 아닌 평양으로 합의하였고 상호주의원칙은 어디로 가고 1차회담일정만 나왔는가? 남조선혁명을 통한 적화통일에 집착해 온 북한의 대남전략에 무슨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평양에서의 단독회담은 과연 우리측에 유익할 것인가? 북한측은 정상회담을 국내정치에만 이용하고 한번으로 끝내버려 남북간의 긴장은 불원 재생될 것 아닌가? 북미3단계회담에서 북한은 어떤 제안을 하고 미국은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처할 것인가?
모든 대화가 실패로 끝날 때 그다음 대책은 무엇이고 어떻게 이행될 것인가등등 궁금한 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필자의 느낌으로는 책임있는 정부당국이 이상과 같은 관심사를 이미 검토하고 있는듯해서 다행인데 남북정상회담은 전례가 없고 또 그 성패는 회담이후의 남북관계에 극대한 영향을 줄 것인만큼 특별한 준비가 요구된다. 우리가 바라는 대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척되어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대로 개최된다고 하면 사견으로서는 양 정상이 솔직한 대화를 통해서 남북관계개선과 통일방안에 관한 피차의 비전과 견해를 개진함으로써 타협과 협력의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있는지를 발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시간을 두고 협의해야 될 복잡한 문제에 성급히 합의를 도출하려고 시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가 7·4공동성명에서 이미 경험했지만 공산측과 어떤 원칙에 경솔히 합의를 하면 원칙의 해결에 이견이 생겨 혼란이 생길 위험이 있다. 회담분위기가 원만할 때는 남북총리회담에서 합의된 92년의 제반협정의 조속하고 구체적 실천을 확실히 약속하는 것으로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대화에 의한 협상이 실패로 끝날 경우의 비상대책도 조용히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교교섭에는 주권이 미치지 않는 상대가 있어 낙관만을 허용할 수 없다.<전외무부장관>전외무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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