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쥴리아나 갤러리서 연장전시/천진한 자아가 펼치는 상상력 만끽/초현실주의 거장 예술의 진가 확인 한국일보 창간 40주년의 하나로 백상기념관에서 열린 「후안 미로 종합전」강북전이 26일로 끝났다. 상반기 우리 화랑가의 주요행사였던 이 전시회에 대한 평론가 이재언씨의 평을 싣는다. 이 전시회는 미술애호가들의 요청에 의해 30일부터 7월12일까지 다시 강남의 쥴리아나 갤러리(514―4266)에서 연장전시된다.【편집자주】
우리 미술계도 이제 많이 성장했다는 느낌이 든다. 현대미술의 세기적 거장 후안 미로의 작품들을 서울, 그것도 강남은 강남대로 그리고 강북은 강북대로 연이어 관람을 할 수 있었으니 큰 변화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대형 미술관에서가 아닌 사설 화랑에서 이러한 야심적 기획이 있었다는 것은 더더욱 반가운 일이다. 강남 쥴리아나 갤러리에서 개막한 미로전은 강북 백상기념관에서 6월 26일자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입체와 평면 합쳐 약 60여점의 출품작들로 전시 공간이 빽빽할 정도로 채워졌고, 미로의 예술적 진가를 확인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전시였다.
미로는 주지하듯 초현실주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초현실주의 화가들처럼 정치색을 띠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앙드레 브르통이나 마송, 에른스트, 달리 등이 주축이 된 초현실주의 선언이나 운동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이름은 언제나 빠져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독특한 예술세계는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경의와 칭송을 한 몸에 받아 왔었다.
그 이유는 다른 초현실주의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초창기부터 유아적인 미술의 가능성을 점쳤으며, 상상력이 넘치는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일구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통제되지 않은 자아만이 다양한 모습으로 발현될 수 있는 통로라 믿었던 까닭이다. 그의 작품들에는 언제나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위험부담이 없는 자아의 유지를 가능케 해준다』는 브르통의 명제가 복음처럼 간직되었던 것이다.
이런 점은 오히려 그의 50대 이후부터 더 잘 나타났다. 실제로 그의 회화 양식이 가장 각광을 받던 1920∼30년대에는 추상주의와 야수파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마치 괴기스런 분위기의 보슈의 화면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그로테스크하게 변형된 형태. 상상력이 숨쉬는 것 같은 역동적인 화면의 구성, 해학적이고 우화적인 내용들… 이 요소들이 바로 미로의 출신지인 카탈루니아적 특색이며, 또한 미로 개인의 개성인 것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을 평면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곤 한다.
이번 출품된 작품들은 주로 1940년대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의 것들로, 특히 유아적 천진함이나 자연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마치 낙서를 한것 같은 선들, 무언가 원생동물처럼 생긴 비정형의 형태들, 이 모두는 무언가 발산과 해방의 기쁨으로 충만해 있다. 거칠고도 정밀하고, 산만하면서도 잘 정돈된 공간, 현실에 대해 어떤 불안 의식을 가지기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의 암시로 남아 있는 허공의 여백들, 이 모두는 그가 탁월한 감각의 소유자임을 입증하고 있는 대목들이다.
이번 작품들이 한 세계적 거장의 주옥같은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것 외에 또 다른 의의를 지니고 있어 보인다. 그것은 국제적 관례와 정도를 지키면서 유치된 전람회라는 점이다. 이제 우리도 국제무대에 당당히 진출을 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 요구하는 룰을 따를 의무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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