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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뭐길래/박정삼(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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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뭐길래/박정삼(메아리)

입력
1994.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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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공이 둥근 것처럼 지구촌의 월드컵 열기도 어느 곳없이 고르게 달아오르고 있다. 세계 1백43개국이 지난 18개월 동안 5백게임 이상의 예선전을 치른 끝에 본선에 오른 24개 참가국은 물론 예선에서 탈락한 나라에서도 축구공의 향방에 따라 일희일비를 거듭하고 있다. 벨기에―모로코경기날 벨기에 도시 곳곳에서는 벨기에인과 모로코이민들 사이에 총성이 오가는 집단 패싸움이 벌어졌고, 스웨덴에서는 월드컵시청을 강요한 남편을 중년부인이 가위로 찔러 숨지게 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중계방송 도중 정전에 화가 난 주민들이 인근 발전소를 습격, 때려부수는가 하면 교도소 죄수들은 월드컵 중계시청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에 나섰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까지 TV시청으로 밤잠을 설치는 국민들에게 인민일보는 「흥분하지 말고 조용히 TV를 시청하자」는 이례적 논평을 게재했다. 러시아의회가 성원미달로 계속 유회되는가 하면, 25일 폐막한 유럽연합(EU) 정상회담이 성과없이 끝난 것도 월드컵에 정신팔린 탓이라는 외신도 나오고 있다.

 축구를 통한 세계평화 추구를 목표로 한 월드컵이 횟수를 거듭할수록 「광기」를 더해가는 것은 국제화에 따른 정보공유화 현상과 함께 현대인의 스트레스 가중을 이유로 든 사람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가 공을 발로 차는 축구행위를 통해 현대인들은 스트레스 해소의 대리체험을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월드컵축구 「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한 경기규칙이 있어야 하고, 이를 집행하는 공정한 심판과 함께 판정에 복종하는 선수들의 준법정신이 전제되어야 한다. 자질부족등의 이유로 심판이 불공정 판정을 내린다든지 또는 선수들이 심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때 「판」은 깨지고 말 것이다.

 이와 함께 멋진 「한판」을 만들기 위해서는 뛰는 선수들의 신체적 유연성이 절대 필요하다. 한국축구가 지난 24일 볼리비아와 0―0 무승부를 기록해 위기에 몰린 것도 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16강에 대한 지나친 집념과 긴장 때문에 결정적 찬스를 무산시켰다는 것이 현지 취재기자들의 분석이다. 어느 종목이나 마찬가지지만 드리블, 패싱, 슈팅으로 이어지는 축구에서 신체적 유연성이야말로 절대요건이 된다.

 독일과의 어려운 한판을 치르는 오늘, 지하철 및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사회가 뒤숭숭한 오늘, 이홍구부총리 겸 월드컵유치위원장이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첫 예비접촉에 나서는 오늘, 관련자 모두가 준법정신과 역지사지의 유연성을 발휘해 주었으면 싶다. 부드러움이 진정 강함을 누를 수 있다는 노자의 유약승강강(유약승강강)의 의미가 되새겨진다.<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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