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가린 숲속 경승지에 「금일성낚시터」 무릇 만물의 시원은 대체로 명쾌하지 않은 법이다. 더욱이 의미있는 것일수록 시원이 가려져 스스로의 신비한 무게를 더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두만강임에랴.
두만강의 발원을 찾아가는 길은 그래서 더 힘이 들었다. 시기마다 기록마다 심지어 주장하는 이마다 두만강의 발원점은 서로 다르다. 상류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실개천같은 물줄기들이 여기저기서 합치고 갈라지는 까닭이다. 그나마 북한쪽의 물길은 더듬어 확인할 길조차 없다.
백두산 동편 고원지대의 원시림 속에서 가까스로 찾아낸 원지는 그러므로 「현재 중국측이 두만강의 발원지로 주장하는 곳」이라는 주석을 붙여야 마땅하다. 원목운반 트럭들이나 이따금 오가는 좁은 산길에서 숲속 사잇길로 꺾어 들자마자 돌연 시야가 탁 트이면서 거짓말처럼 호수가 떠오른다. 워낙 감쪽같이 길에서 고립돼 있는 탓에 노련한 현지안내인조차 몇번을 지나치며 헤맸다.
자작나무숲과 좁은 늪지에 둘려 있는 이 산중호수는 둘레가 족히 10리는 될법한 크기에 거의 완전한 원형이다. 원지라는 이름도 그래서 얻은 것이다. 인적이 전혀 없어 사위가 적막한 호수에 물이 드는 곳은 어디에도 보이지않는다. 이곳에서 두만강의 한 갈래는 아직 사연을 만들지 않은 무구한 모습으로 이제 막 그 긴 여정을 시작할 참이다.
원지 한 귀퉁이를 빠져나간 물줄기는 약류하라는 어울리지 않게 큼직한 이름을 달고 지하와 지표면을 번갈아 오르내리며 1㏄쯤 동진하다 북한땅 적봉을 돌아 나온 홍토수를 만나 합수한다. 홍토수의 굵기도 딱 약류하정도이다. 폭 1m도 안되는 물줄기를 하라고 부르다니…. 중국인의 예의 그 과장버릇이 이곳 작명에서도 드러나 웃음을 머금게 한다.
약류하와 홍토수의 합수목에 이르러서야 물줄기는 비로소 두만강이 된다. 이 개울이 말하자면 국경하천으로 두만강의 시작점인 것이다. 이때문에 여러 기록과 보도에서 자주 원지로 잘못 소개되는 곳이기도 하다.
개울을 건너면 바로 북한땅이다. 양켠에 한 발씩 걸쳐 놓기도 하고 두 발을 모두 북한땅에 옮겨보기도 하는 사이 사람과 이념의 가름이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남북의 합수머리는 도대체 어디쯤인가 하는 상념이 꼬리를 물면서 장난스러움은 어느덧 쓸쓸함으로 바뀐다. 주변을 온통 뒤덮은 억새풀들만 바람결을 따라 누웠다가 일어나기를 속절없이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멀지 않은 관목숲속에 북·중국경비가 서 있다. 1962년 아래편 지류 석을수에서부터 이곳으로 국경을 재조정할 때 세워진 높이 1m정도의 화강암비에는 21호 국경비라고 씌어 있다.
이제부터 두만강물길을 따라가는 본격여정이 시작된다. 개울은 좀처럼 넓어지지 않고 돌틈으로 덤불사이로 숨바꼭질을 하는 사이 억새밭은 뒤로 물러가고 다시 하늘을 가린 숲길로 접어든다. 가문비, 낙엽송, 잎갈나무등이 뒤섞인 틈에 줄기 흰 자작나무군락이 반점처럼 박혀 있다.
문득 「두만강변 산보놀이금지」경고판이 막아선다. 두만강 상류에서는 최고의 경승지로 꼽히는 여기가 이른바 「김일성낚시터」다. 좁은 개울 중앙을 3m쯤 비워두고 폭 넓은 목재가교가 걸쳐져 있다.
김일성이 만주에서 빨치산운동을 할 당시 이곳에서 두만강의 명물 산천어를 낚으며 훗날 최대승첩으로 자랑하게 될 「보천보전투」를 구상했다는 곳이다. 북한측에서는 인민들이 한번은 순례해야 할 「성지」로 정해 언덕너머에 빈관(여관)과 양어장등 구색을 갖춰 단장해 놓았다는 현지인의 설명이다. 그러나 중국사람들에게야 나들이장소 이상이 아닐 터이다.
오랜 세월 풍우에 씻긴 잿빛 널빤지 위에 앉아 숨돌리려던 차에 건너편 북한초소 앞에 총 든 경비병이 불쑥 날카로운 눈초리를 드러낸다. 자칫 자극했다가는 봉변을 당하거나 곧바로 중국초소에 항의가 전달돼 남은 여정을 망치게 된다는 안내인의 겁질린 「협박」에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 했다.
두만강은 발원지를 떠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역사에 치이고 긁힌 상처들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다.
◎강의 어원과 길이/만족어 「투먼」설 유력… 5백47∼6백10㎞ 주장 “분분”
두만강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갈래 설명이 있으나 만족어 「투먼」을 한자음으로 차용한 도문강이 두만강으로 전이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투먼은 만 갈래 물의 원천, 혹은 만 갈래 물길의 흐름이 합쳐지는 합수머리라는 뜻이니 두만강에 손색없는 이름이다.
도문색금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다. 여진말로 새가 많은 골짜기라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이 이름 외에도 고려강, 도문강, 통문강등 갖가지로 불러왔으나 우리 기록에서는 늘 일관되게 두만강이었다.
두만강의 길이에 대해서도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북한과 중국간의 국경조정(62년) 이전까지 국경하천이었던 석을수를 원천으로 잡을 경우 두만강의 길이는 대체로 5백47㎞가 된다. 대부분의 국내자료에 이렇게 나와 있으며 한국일보의 시리즈도 이 길이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지금은 홍토수와 약류하의 합수지점에 국경비가 선 만큼 원지나 홍토수의 발원지부터 실측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 아직 이 길이는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다. 상류의 물줄기중 가장 긴 북한쪽 서두수를 기준으로 하면 대략 6백10㎞로 훨씬 늘어난다. 이 경우 두만강은 낙동강을 제치고 압록강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번째 긴 강이 된다.
<특별취재반>특별취재반>
권주훈부장대우(사진부)
이준희기자(사회부)
이재열기자(기획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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