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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4.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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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사의 전개과정에서 「6·25전쟁」은 역사·사회적으로 엄청난 변동을 가져왔다. 3년간의 전쟁에서 막대한 인명피해가 났다. 한국군을 포함한 유엔군이 18만명, 북한군 52만명, 중공군 9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민간인도 99만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했다. 사회제도와 규범의 파괴 또한 우심했다. ◆전쟁후 지속된 분단과 대결상황은 민족성의 이질화를 초래했다. 그 혹독한 일제치하에서도 역사적 공동생활을 계속해왔던 「한민족」이 전쟁후 정치·경제·사회·문화면에서 극과 극의 2체제를 고착시킴으로써 민족성에 너무 이질적인 요소가 배태되어 숙성하게되면서 민족 공동체의식까지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49년의 분단사는 「한민족」으로하여금 정치·경제적 공동성을 상실케했다. 민족국가의국민(NATION)이 마땅히 갖게되는 공속성을 마비시켜버렸던 것이다. 견고한 민족의 특질인 민족어의 공통점을 비롯해 문화공동성은 아직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정치적 공동성이 없으면 정치적으로 한민족이라고 볼수 없다는게 학자들의 견해다. ◆혈통이나 역사적으로 하나의 민족이라 할지라도 근대적 민족국가의 정치적 민족으로 통합되기전에 분단됐다면 두국민체제를 한동안 더 유지하다가 정치적 공동성이 어느 정도 생기고 경제적 격차가 좁혀졌을 때 재통일하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논리가 그래서 가능해지는 것이다. ◆무력통일이나 독일방식의 흡수통합보다는 남·북한 2체제간의 상호불가침강화상태로 우선 전환시키는 작업이 진짜 통일의 전단계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모레는 「6·25전쟁」발발 44주년이 되는 날이다. 김영삼대통령과 김일성간의 정상회담추진이 핫 이슈가 돼있다. 통일문제를 새삼 생각해 보게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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