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조작 통한 엔고억제 한계/적자감축위해 미 「방치」도 한몫 21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가 한때 달러당 99.85엔까지 치솟으면서 「1달러=1백엔」이라는 심리적 마지노선이 결국 무너졌다. 엔화가 달러당 90엔대로 진입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출범한 브레튼우즈체제에서 달러당 3백60엔으로 출발했던 달러대 엔 교환비율이 두자리 숫자로 떨어진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는 경제대국 일본의 위상을 과시하는 한편 전후 세계경제를 이끌어 온 미국경제의 약화와 기축통화로 사용되고 있는 달러화의 쇠락을 반영하는 것이다.
사실 달러당 1백엔선의 붕괴는 일찍부터 예견돼 왔다. 지난해 8월 달러당 100.40엔을 기록한 바 있는데다 지난 5월에도 달러당 100.65엔으로 1백엔선에 아슬아슬하게 육박, 1백엔대 돌파는 시간문제로 여겨져 왔다.
그동안 엔화가 1백엔대로 접근할 때마다 미일 금융당국은 달러화를 긴급 매입하고 엔화를 방출하는 시장개입을 통해 급한 불을 껐다. 급격한 엔고가 진행되면 일본이 우선 수출에 막대한 지장을 받게 되지만 미국도 금리인상 등의 경제적 마이너스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상호이해의 일치에 따라 시장개입에 적극 나섰던 것이다. 인위적인 조작이 없었다면 엔화는 벌써 90엔대에 진입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같은 엔고 억제책에도 불구하고 이날 1백엔대가 무너졌다는 점에서 미일 정부는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다. 시장조작 등 물리적 조치로 엔화 강세를 막는데 한계에 달했음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최근 급격한 엔고 현상을 일본경제전문가들은 두가지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우선 일본의 경이적인 무역흑자 규모를 들 수 있다. 4년째 계속되는 장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세계최대의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일본경제의 잠재력이 엔화 선호심리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올하반기부터는 일본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될 조짐이 각종 지표에 나타나 엔화 가치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미국의 엔고 유도정책이 또다른 요인으로 지적된다. 미국은 미일 포괄무역협상 결렬 이후 일본의 무역흑자를 삭감시키고 자국의 재정적자를 완화하기 위해 위험한 곡예를 하듯이 엔고를 유도·용인해 왔다. 정상적인 무역거래로 일본의 흑자감축을 추진하지 않고 환율조작이란 비정상적인 조치를 남발한 것이 이번 상황을 몰고 온 가장 큰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앞으로 엔화추세에 대해 전문가들은 뉴욕등 해외시장에서의 엔고가 일본국내에도 영향을 미쳐 당분간 엔고 행진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22일 도쿄 외환시장은 달러당 100·35엔에 개장, 종래 기록을 깨뜨리고 전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일본은행의 긴급 개입으로 상오장은 간신히 100.15엔에 마감됐지만 언제라도 90엔대로 진입할 가능성이 잠재해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일본은 엔고와 관련, 이날 상오 하타(우전자)총리 주재로 긴급각료회의를 열어 『외환 금융 자본시장을 안정시켜야 할 중대한 국면』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각국의 통화당국과 긴밀히 협력·대응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일본은행도 시장개입에 강력히 나설 태세다. 모처럼만에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경기회복 조짐에 엔고가 찬물을 끼얹는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엔고가 지속될 경우 일본기업들의 수출저하, 설비투자 감퇴, 고용악화, 개인소비 위축 등 심각한 연쇄파장이 오게 된다.
또한 현재 진행중인 미일 포괄무역협상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쳐 일본은 미국에 보다 구체적 시장개방안과 내수확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몰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도쿄=이창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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