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제재모면·국제공조와해 속셈” 경계 필요/「무작정 만나자」 자칫 실망만 남북정상회담이 일단은 성사되는 쪽으로 분위기가 잡혀가고 있다. 카터전미대통령의 구두메시지가 전달된 직후 정부내에서는 정상회담 성사여부나 성과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이 한때 엇갈렸으나 김영삼대통령의 즉각적인 수락과 그에 뒤이은 우리측의 예비접촉 제의로 인해 비관론은 잠시 꼬리를 내리는 형국이다.
그러나 비록 낙관론이 우세한 상황일지라도 북한의 엉뚱한 태도돌변으로 우리측만 상처를 입는 일이 없도록 만사 튼튼히 대비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만만찮게 제기되고 있다.
현재 정부내 상당수 당국자들과 주변의 전·현직 고위인사들 사이에서 거론되고 있는 신중론은 일단 김대통령 자신이 「역사를 바꿀만한 일」로 기대하고 있는 남북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해 전체적인 분위기를 깨뜨려서는 안될 것이란 쪽에 좀 더 비중이 실려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중론자들은 우선 북한의 정확한 진의를 파악해야 하며 북한의 핵투명성 보장이나 대북제재안등 엄연한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충고 또한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신중론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그동안 정상회담 제의를 계속 반대하거나 외면해 왔던 북한이 하필이면 핵위기감이 팽배하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움직임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왜 갑자기 먼저 제의해 왔느냐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신중론자들은 『북한의 이번 제의는 결국 다급해진 대북제재를 피하고 한·미·일등의 국제공조체제를 와해하려는 검은 속셈』이라며 경계하고 있다.
이들은 또 『예비회담을 통해서는 의제등 절차문제로 시간을 끌것이 아니라 정상회담을 위한 시간과 장소문제를 집중 논의할 것』이란 이홍구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의 발언에 대해서도 다소 회의적이다. 원래 정상간 회담은 그전에 이미 고위실무자들끼리 만나 대부분 핵심 현안들을 타결한 후 마지막 절충이나 결정을 위해 갖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에 이같은 사전조율 없이 무작정 만나는 것은 자칫 실망만 안겨주게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 전직 고위인사는 『「정상회담을 언제, 어디서나, 조건없이 갖자」는 총론적 적극성은 북한이 그동안 견지해 왔던 상투적 태도』라며 『우리는 「각론」에 가서 태도를 바꾸고 표변하는 북한의 이중성을 경계해야 할것』이라고 충고 했다.
또 다른 인사 역시 『북한이 느닷없이 정상회담 개최문제를 제시한 것을 보면 이를 북미3단계회담을 끌어내기 위한 카드로 써먹다가 미국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다시 폐기해 버릴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정상회담이 성사됐을 경우 그 성과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지적사항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통일원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극적으로 타결됐던 7·4공동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공동선언등도 북한측의 억지주장들로 인해 제대로 그 정신이 발효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남북정상이 서로 만나서 그저 악수나 하면서 평화통일에 관한 「선언」만 한다면 이는 또다시 북한의 선전에 이용당하는 꼴이 될 수도 있으며 이로 인해 우리측이 받게될 상처는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 당국자들은 카터가 미CNN과의 회견에서 「김일성주석이 남북한 병력을 10만명 이하로 감축하자고 제의했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 『그같은 주장은 정전 직후인 54년부터 지금까지 기회만 있으면 되풀이해온 북한의 상투적 기만책으로 이런 말에 현혹돼선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충고들에 대해 정상회담 성사를 추진중인 정부의 당국자는 『제재와 대화를 병행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으며 만약 북한이 또 다른 불순한 저의를 숨기고 있다면 앞으로 예상되는 북미3단계회담이나 남북한 정상회담 예비접촉 과정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라며 『설사 정상회담이 열린다 하더라도 북한의 저의에 말려들거나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의 무리수는 결코 두지 않을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홍윤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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