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북 3단계회담 전제조건에/「핵과거」 불포함 제재논리도 약화 카터전미대통령의 평양방문 이후 유엔 안보리에서의 북한제재움직임은 거의 「개점휴업」상태이다. 북한핵문제를 유엔제재를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던 미국 정부가 카터·김일성회담 이후 북한핵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정부는 표면상으로는 안보리의 북한제재결의안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 미국의 올브라이트유엔대사는 20일에도 러시아의 보론초프유엔대사를 만나 결의안에 대한 의견절충을 벌였으며, 안보리이사국들에 카터방북에 관해 브리핑했다. 또 21일에 있을 크리스토퍼미국무와 코지레프러시아 외무장관회담에서도 안보리결의안을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제재 결의안 캠페인은 추진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이다. 카터가 가지고 온 김일성의 메시지가 신통력을 발휘하여 결의안을 추진할 수 없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카터의 방북 이후 미국의 정책이 수정돼 안보리 제재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없는 형편이다. 카터는 『내가 만일 클린턴대통령의 유엔제재에 동조한다면 왜 북한에 갔겠느냐』 『한반도의 핵위기는 끝났다』고 말하며 북한제재에 반대의사를 밝힘으로써 국제사회가 외교적 해결로 가도록 분위기를 심어놓았다.
북한핵문제에 대한 카터의 논평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클린턴정부가 카터의 방북을 계기로 모든 문제를 제3단계 북미고위급회담에서 풀겠다는 자세로 변화한 듯한 느낌이다. 북한핵을 전담하고 있는 로버트 갈루치국무차관보가 제시한 3단계 회담의 전제 조건은 첫째 핵재처리의 중단, 둘째 국제원자력기구(IAEA)사찰관의 북한체류허용, 셋째 새 연료봉의 재장전 유보등 3가지이다.
미국이 제시한 조건은 북한이 수용가능한 것들이다. 왜냐하면 일본등에서 제기하고 있는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에 관한 과거행적을 3단계회담까지는 따지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경수로원자로의 교체나 향후 핵물질전용을 감시하는 통상 및 일반사찰은 허용해오다가 IAEA가 89년 원자로가동을 일시 중단했던 행적을 캐려들었기 때문에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겠다고 하면서 현 상황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일단 북한의 과거 핵관련 행적을 3단계회담까지 덮어두겠다면 북한을 제재할 논리가 없어지는 셈이다. IAEA사찰관이 과거 행적을 추적할 수 있는 연료봉 샘플을 채취하려는 것을 북한이 방해했기 때문에 이번 유엔안보리제재 결의가 추진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은 안보리제재 결의안협의가 계속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이 이렇게 안보리결의안을 「현안」으로 살리고 있는 이유는 바로 북한의 의도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북미가 실무접촉을 통해 3단계회담일정을 합의하면 안보리 결의안추진은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협상하면서 제재결의안이라는 회초리를 휘두를 수는 없다.
또한 유엔안보리의 북한제재결의안 추진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중의 하나는 한국의 정책변화이다. 김영삼대통령은 카터가 가지고 온 김일성주석의 남북정상회담 제의를 즉각 수락하고 정상회담추진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유엔의 경제제재와 남북한 정상회담 또한 양립할 수 없는 일이다.
이래저래 유엔 안보리의 대북한 결의안은 용두사미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로버트 갈루치가 이끄는 미국의 대북한 정책팀이나 한승주외무장관이 주도하는 한국의 대북한정책팀이나 그간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아직도 일대화로 핵문제가 일괄타결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유엔본부=김수종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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