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부총리급 격상 강한의욕/핵문제 돌출땐 신축 대응키로 정부가 20일 북한측에 대해 정상회담개최를 위한 예비접촉을 전격 제의한 것은 카터전미대통령을 통해 전해진 북한 김일성주석의 의사를 남북한 직접채널을 통해 확인하겠다는 뜻이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정상회담을 개최하자는 김일성주석의 의사가 김영삼대통령에게 전달된지 불과 사흘만에 나온 우리측의 이같은 제의는 북한측으로서도 어느 정도 의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날 상오 이영덕국무총리주재의 고위전략회의에서 확정되고 곧바로 북측에 전달된 전화통지문에 담긴 우리측의 입장에는 몇가지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우선 정상회담 성사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이던 의제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명시를 하지 않고 포괄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것이다. 이날 대북제의는 이와 관련, 『남북간 긴장국면을 조속히 해결하고 화해협력 단계를 정착시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길을 열어갈 것』이라고 일반적으로만 규정하고 있다.
정부의 이같은 입장은 일단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남북관계의 큰 흐름을 뒤바꿔 놓은뒤 구체적인 현안을 마무리 하자는 「선대좌―후타결」접근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원측은 이를 『얼음을 깨는 만남 실현』이라고 표현하면서 『정상회담에서 포괄적인 원칙을 마련하고 뒤에 실천조치를 강구하는 방법』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홍구부총리도 이날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과거처럼 기술적인 절차 문제를 놓고 시간을 끌어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며 빠른 시일내에 결말을 내겠다는게 정부입장』이라면서 『예비접촉은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측이 실무절차 문제만을 논의하는 예비접촉의 수석대표를 부총리급으로 격상, 제의한 것도 일단 이번 회담을 성사시켜 보자는 의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쌍방정상이 만나 악수를 나누는 것만으로 남북관계 뿐 아니라 핵문제 해결방향에 대해도 국면전환의 효과를 가져올 수도있다. 북한체제의 성격상 김일성주석과 회담한 당사자에 대해서 비방과 적대정책을 계속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의 이같은 영향은 우리측의 입장에서도 똑같이 적용되고 위험부담이 있는「양날의 칼」과 같은 측면이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를 향해 의견이 접근되고 있는 가운데 대북제재를 추진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로 무산된 남북한 특사교환의 협의과정에서 북한측이 「국제공조 체제의 포기」를 전제조건으로 끝까지 고집했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의제를 명시치 않은 남북정상회담」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돼가는 반면 핵투명성 보장과정이 다시 난관에 봉착하고 북·미회담이 무산 또는 결렬될 경우, 우리측은 심상치 않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 이번의 정부조치를 일종의 「도박」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고, 정상회담 조기추진에 앞서 북한측의 진의를 확인하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던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이다. 정부는 이같은 사실확인의 방법으로 북·미접촉등 외교경로를 통하거나 북한측 동향을 지켜보는 것보다는 부총리급 예비접촉을 통해 직접대좌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는 우리측 최고위의 정치적 판단인 것으로 보여진다. 이부총리는 『북한의 진의는 우리측 제의에 대한 북측의 대답으로 확인될 것』이라고 말해 이번 예비접촉의 전격적 제의자체가 탐색전의 의미가 있음을 시사했다.
정부는 아직까지 『대화와 제재를 병행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바꾸지 않았다. 예비접촉 또는 전통문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북한측이 핵문제와 관련한 제재추진을 명백하게 포기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에 대해 우리측은 핵문제의 진전에 따라 신축적인 대응을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우리측은 이번 제의를 통해 정상회담이 북측에서 먼저 제의된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도 주목되는 일이다. 전통문은 『귀측의 제의는 바람직한 것으로 이에 동의한다』고 밝히고 있다. 정상회담을 북측이 먼저 제의한 것으로 정의하는 것은 향후 교섭과정에서 유용한 안전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유승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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