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적대해소」후 다음 논의/시기·장소 북측 원하는대로 김영삼대통령이 북한 김일성주석의 제의를 수락함으로써 남북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오게 되자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20일 이영덕국무총리주재로 고위전략회의를 열어 정상회담의 시기 장소 의제등을 집중 협의할 예정이다.
정부는 김대통령과 김주석 사이에 『빠른 시일내, 어느 곳에서라도, 아무런 조건없이 만나자』는 합의가 이미 간접적으로 이뤄져 있는 만큼 예비회담등을 정치적으로 생략하거나 간소화한 뒤 정상회담을 곧바로 개최하는 쪽으로 대강의 원칙을 세워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사전에 모든 것을 협의해 합의사항까지 마무리해 놓고 정상들이 만나 이를「확인」하고 그 실천을 담보하는 기존의 정상회담 모양이 아니라, 일단 남북정상이 만나 「적대관계」를 해소해 놓고 이후 실무협의를 진행하며 후속조치들을 협의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와관련, 정부의 한 당국자는 19일 『남북정상회담은 일반적인 수교국들 사이의 정상회담과 차원을 달리하는것』이라면서 『일반적인 정상회담의 절차를 진행시키기 위한 담보로서 「정상들의 면담」이 먼저 이뤄져야 하며 따라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남북정상회담도 이러한 차원에서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이어 『그동안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특사교환―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이나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고위급회담」등이 수없이 개최됐으나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대좌는 늘 대치로 끝나버렸다』고 지적하고『이번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적대관계 해소를 상징적으로 담보하는 문제가 최우선 목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따라서 20일의 고위전략회의에서는 한가지 원칙과 두가지 의제를 검토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즉 시기와 장소는 김주석쪽이 원하는대로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정상회담의 내용과 관련, 우리측은 ▲한반도 차원에서 상호 적대화의 의지와 행동을 포기하는 문제 ▲국제적 차원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실천한다는 문제를 정상회담의 주된 의제로 삼겠다는 것이다.
우선 시기와 장소의 문제는 양측 정상간에 원칙적인 합의가 서있는 만큼 공식적인 전달을 위한 접촉만이 과제로 남을 것이다.
적대화 포기문제는 이후 궁극적인 관계개선을 전제로 양측 당국자간의 관련조치들이 수반되게 될 것이다. 그동안 남북간의 접촉들이 항상 무위로 끝난 이유는 『너희들이 우리를 적으로 여기고 있다』는 인식이 전제돼 있었고 『우리를 적으로 간주하는 이러이러한 조치들을 먼저 없애라』는 행동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남북정상의 만남 자체가 상호 적대화 포기의 상징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사전에 당국자들간에 실무합의를 해놓고 정상이 만나는 모양보다 만남을 성사시킨 뒤「정상회담에 상응하는 조치들을 만들어 나가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반도비핵화실천 문제는 적대화 포기의 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대등한 책임과 의무를 진다」는 대국제사회의 선언이 되기도 한다. 나아가 이는 현재의 북한핵 문제를 그야말로 포괄적이고 철저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정상회담에서 이러한 합의가 이뤄진다면 이는 지난 91년말 북한이 우리의「한반도비핵화 선언」을 수용했던 것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김주석이 이번에 카터전미국대통령을 만나 제의했던 몇가지 제의나 전제도 자연스럽게 그 해법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정병진기자】
◎첫정상회담 계기 꾸준한 대화/동서독경우/1년만에 베를린통화·또1년뒤 통행재개
남북한 양측은 사상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게 될 경우 지난 70년 처음 개최된 동서독 정상회담의 사례를 참고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이 아니면서도 서로 다른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남북한에 동서독 정상회담은 유일한 모델이라 할수있다.
동서독 정상회담은 지난 70년 3월19일 동독의 에르푸르트에서 열렸다. 에르푸르트는 서독쪽 국경에서 70 떨어진 소도시. 당시 회담은 빌리 슈토프동독총리의 제의를 빌리 브란트서독총리가 회담 한달전인 2월18일 수락함으로써 이뤄졌다. 서독이 「동방정책」을 추진하던 시점이었다. 브란트총리는 수락의사 표명과 함께 『회담에 어떠한 선행조건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회담수락후 동서독양측의 고위관리들은 10여일후인 3월2일부터 동베를린에서 실무예비회담을 가졌다. 4차례에 걸친 실무회담은 도중에 중단되는등 우여곡절 끝에 회담 1주일전에야 일정을 확정했다. 동서독총리는 3월19일 상오10시부터 3차례에 걸쳐 회담을 가졌다. 이에 앞서 특별열차편으로 에르푸르트에 도착,슈토프동독총리의 영접을 받은 브란트총리는 국빈대접을 받았지만 공식환영식은 없었다. 최초의 동서독 정상회담은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것에 비해 큰 성과를 낳지는 못했다. 회담에서 브란트서독총리는 동독이 꾸준히 요구해온 「동독승인」을 거부했다. 다만 그는 동서독 어느 쪽이든 전체독일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주장할 수 없다며 전독대표권을 포기했다. 양측은 계속 협상할 것과 2차회담을 2개월후인 5월21일 서독 「카셀」에서 열기로 합의하는데 그쳤다.
동서독의 사례에서 보듯 남북정상회담도 실무회담단계부터 적지 않은 고비를 만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동서독처럼 당일회담이 될 경우 이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휴전선 근처의 소도시에서 열릴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회담의 성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동서독의 경우도 첫 정상회담을 계기로 꾸준히 대화를 계속해 1년뒤 동서베를린의 전화통화재개, 다시 1년뒤 베를린 통행재개를 이뤄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첫 회담을 계속적인 대화로 이어갈 수 있는 양측의 성의있는 태도라 할 수 있다.【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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