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없이 돌출… 속단은 일러/성사땐 핵문제에 새 돌파구/“제재서 대화로 급변” 정책표류 걱정도 북한을 방문했던 카터전미국대통령이 김일성북한주석의 남북정상회담 제의를 전하고 김영삼대통령이 이를 즉각 수락함으로써 북한 핵문제는 완전히 새국면을 맞았다. 진전방향에 따라서는 핵문제를 비롯한 남북관계 전반에 전기를 이룰 수도 있게 됐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김주석의 제의나 김대통령의 수락이 사전접촉등의 교감을 거친 후 나온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이고 김주석의 제의 의도가 불분명한 상황이어서 성사여부나 성과에 대한 속단은 금물일 것같다.
김주석은 카터전대통령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조건없이 김대통령을 빠른 시일내에 만나고 싶다』는 구두메시지를 전했다. 이에 대해 김대통령도 똑같은 표현으로 이를 수락했다. 우리 정부는 카터전대통령이 북한에 가 김주석을 만난후 김주석의 「핵활동 동결」등의 뜻을 전한 뒤에도 유엔 안보리 제재추진을 확인했었다. 17일 카터전대통령이 『미국정부는 유엔 제재추진중단을 결정했다』고 말했다는 CNN보도에 대해서도 『미국정부로부터 사실무근 보도라는 공식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상회담수락은 분명 국면이 제재에서 대화로 바뀌게 됨을 의미한다.
주돈식청와대대변인은 유엔 제재추진 중단여부에 대해 『그 문제와 정상회담은 별개의 문제』라고 했지만 조건없는 정상회담은 일단 제재추진 중단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김주석의 느닷없는 정상회담 제의가 제재를 피하기 위한 국면호도용이 아니냐는 우려섞인 분석이 제기되는 것도 이때문이다. 정상회담이 성사되기까지에는 수없는 난관이 있을 것이고 북한은 또 시간을 벌 가능성이 크다.
김대통령은 지난해 2월 취임식에서 남북정상회담 용의를 밝혔다가 취임 1백일 회견때는 『핵무기를 가진 상대와는 악수할 수 없다』고 선핵문제 해결을 강조했었다. 김대통령은 이어 지난 2월 취임 1주년회견에서 『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남북정상회담을 갖겠다』고 밝혔고 북한의 「서울 불바다」발언이 나온 뒤인 5월 민주평통위원들과 만났을 때도 북한이 핵투명성 보장을 위한 국제 핵사찰을 조건없이 수용해야 북한당국과 남북현안에 대해 대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수락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조건이 없어진 것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계속 정상회담에 대비해왔고 특히 카터전대통령이 이번에 북한을 다녀오면 정상회담제의를 전해올지 모른다고 예상했다고 주대변인은 밝히고 있지만 우리의 정상회담 수락이 너무 급작스런 상황에서 나온 것 아니냐는 일부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이때문이다. 정상회담을 위한 남북실무접촉이나 또는 특사교환이 이뤄지게 되면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서는 북·미3단계회담을 포함, 2개의 채널이 가동된다. 북의 정상회담 제의가 국면호도를 위한 지연전술이 아니라면 북한 핵문제 해결을 사실상 미국에 맡겨둔채 소외됐던 우리의 입장이 호전되는 것은 사실이다. 남북정상이 머리를 맞대고 핵문제 해결방안은 물론이고 남북문제 전반을 논의하게 된다면 엄청난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핵문제만해도 상호사찰문제를 통해 북한의 과거 핵활동의 투명성을 확인해볼 수 있다.
특히 북한의 앞으로의 핵활동을 동결시키는 쪽에 비중을 두어온 미국은 남북정상회담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렇지만 이는 정상회담제의가 순수한 의도에서 나왔고 따라서 빠른 시일내에 열리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북한은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의 과정이나 북·미3단계 회담 진행과정에서 쓸 수 있는 핵카드가 아직도 얼마든지 있다. 미국이 카터방북을 계기로 너무도 쉽게 제재에서 대화로 돌자 우리정부도 중심을 잡지 못한채 표류하는게 아니냐는 지적도 그래서 나오고 있다.【최규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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