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관리들 “커뮤니케이션 착오” 카터「순진함」탓해/카터 “수차례 전화확인” 강조… 단순실수 아닌듯/「백악관서 일단 언질·내부이견등 작용 부인」유력 지미 카터 전미국대통령이 지난 17일 평양에서 유엔의 대북제재 움직임 중단설을 CNN TV를 통해 전격 발표한 배경에 대해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있다.
미행정부 관리들은 카터의 대북제재 결의안 중단발표에 따른 혼선이 카터측과 백악관측의 「커뮤니케이션상의 착오」 때문이라고 둘러대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로버트 갈루치 북핵전담대사는 17일 『북한과 대화를 하다 보면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생긴다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다』면서 비난의 화살을 북한측에 전가했다. 갈루치대사의 말을 뒤집어 보면 북한이 카터에게 잘못된 사실을 입력시켜 그가 북한측에 잘못된 내용을 출력하게 됐다는 해석이 담겨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카터는 그의 평판에 걸맞은 「순진한」 행동을 되풀이한 셈이다. 저명한 방송평론가인 존 맥로린은 카터가 지난 79년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당시 소련공산당서기장과의 회담에서처럼 상대방의 언질을 지나치게 믿고 행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카터는 당시 브레즈네프와의 회담에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계획이 없다는 말을 맹신했다가 허를 찔린 뒤 『내가 그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맥로린은 『브레즈네프는 김일성에 비하면 애송이』라면서 카터의 행동에 대해 일단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자 핵문제에 해박한 식견을 갖춘 카터가 이처럼 민감한 사안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그가 「수차례」의 전화를 통해 백악관으로부터 확인한 내용이라며 이를 강조한 사실로 미뤄볼 때 단순한 실수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렇게 보면 카터는 북한측으로부터 핵동결 방침에 관한 구체적인 확약을 받아 이를 백악관측에 전달하자 백악관측이 제재중단용의를 표명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정부는 한국 일본등 관련국들과의 사전협의가 없는 상태에다 내부의 이견마저 상존하는 상황에서 이를 공표하는데 주저하다가 카터의 전격발표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이를 부인하고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이와 관련해 카터전대통령이 미행정부내의 대북강경파들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으로 제재중단 시나리오를 사전에 공개해 이를 기정사실화하려 했다는 소문도 나돈다. 그는 김일성과의 회담을 통해 북측의 「선의」를 액면 그대로 평가하고 이를 3단계 고위급회담의 조건이 충족된 것으로 판단했음이 분명하다.
아무튼 카터의 발언은 『3단계 고위급회담의 토대만 마련되면 제재결의를 중단한다』는 클린턴행정부의 기존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샘 넌 민주당상원군사위원장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검증가능한 핵개발 동결조치」를 취하는 경우 고위급회담의 토대가 조성된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면서 카터가 가져 올 메시지를 지켜 보자고 말했다.
미국무부는 카터전대통령으로부터 그의 북한방문 결과를 브리핑받는대로 빠르면 20일 뉴욕의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와 실무접촉을 갖고 핵개발 동결의사에 대한 구체적 검증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갈루치대사는 『북한이 핵투명성의 보장을 위한 제반조치를 검증이 가능한 방법으로 이행해 나간다면 3단계 고위급회담이 개최될 것』이라고 말하고 『하지만 3단계회담의 기초가 충족되지 않는한 제재조치는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클린턴대통령이 카터전대통령과 회담을 가질 것으로 안다면서 이에 앞서 행정부 고위관리들이 이번 주말 카터대통령으로부터 방북결과를 청취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카터의 이번 발언이 단순한 실수였는지 아니면 계산된 행동이었는지는 차츰 시간이 지나야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일로 클린턴정부는 외교에 미숙하다는 보수파들의 혹평을 또 한차례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됐다.【워싱턴=이상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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