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금융기관에서 적금을 해약했다.약 40분이 걸렸다. 마침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타결돼 매스컴은 금융개방이 임박했다고 연일 보도하고 있던 때였다. 이래서야 어떻게 국내 금융기관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안타까웠다. 지난 5월말 은행등 금융기관과 백화점등 유통업체 44개가 고졸 여사원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직무수행과 직접 관련이 없는 용모와 키, 체중등 신체적 조건을 채용기준으로 제시해 남녀고용평등법과 헌법위반으로 검찰에 고발된 일이 있다. 이 업체들은 사원추천의뢰서에 체중을 50∼60㎏이하, 신장을 1백60∼1백67㎝이상으로 제한해 물의를 일으켰다. 17세 한국여성의 평균신장이 1백58.6㎝라고 하니 부당한 조건임에 틀림없다.
금융기관이나 백화점 같은데서 미모의 직원을 보는 것이 물론 불쾌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용모를 최우선해 선발한다면 업무처리능력은 어떻게 될까. 고객들은 신속한 업무처리를 중시한다. 현금자동입출금기(CD·ATM)사용이 급증하는 것도 대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기업은 미인계를 써서 한때 고객의 환심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계약을 성사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현혹이 영원한 고객을 만들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 기업의 경쟁력은 결코 젊은 여직원들의 용모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고객만족(CS)의 서비스가 앞서야 할 것이다. 출입구에서 몸에 배지 않은 부자연스런 미소보다 고객의 전화를 공손히 받고 매장에서 화장실이라도 물어볼 때 친절히 응대하는 행동 하나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자유세계를 풍미한 이안 플레밍의 첩보소설 007시리즈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의 비서는 노련한 중년부인이다. 그녀는 비록 픽션에서지만 자유세계 최강의 첩보원 비서답게 모든 일을 척척 처리한다.
그 픽션은 부인들이 훌륭한 일꾼이라는 현실에 바탕을 둔다. 유럽에서는 할머니 점원 택시기사, 아주머니 스튜어디스 은행지점장이 흔히 보인다. 서점에서는 하얗게 머리가 센 할머니들이 돋보기를 쓰고 요구하는 책을 쉽게 찾아 준다. 그뿐인가. 주부 공무원들 역시 축적된 지혜와 에누리 없는 원칙의 적용으로 사회를 지키는 원숙한 대들보가 되고 있다.
문제된 업체들의 채용기준은 영업부진을 타개하려는 고육책인지 모른다. 만약 그것이 젊은 여성의 용모를 자산으로 간주하는 풋내기 기업의식의 반영이라면 우리사회에 국제경쟁력형성은 요원한게 아닌가 걱정된다.<여론독자부장>여론독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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