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정부에 우호감 조성 힘쓰고/대학엔 각종 장학금 “내사람 만들기” 『모두 똑같은 무역조건을 제시할 경우 어느 나라와 거래하고 싶습니까』 한국일보 아시아리포트 취재반이 필리핀의 고급관료 상공인 2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약식 설문조사에서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미국과 일본을 골랐다.
필리핀은 2차세계대전 때 일본의 침략을 받은 쓰라린 경험이 있다. 그런데도 필리핀에서는 관료 기업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대체로 일본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같은 현상은 필리핀 뿐만 아니라 동남아 국가들에서 대부분 그대로 적용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동남아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우선 일본의 현지화 전략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일본의 한 건설회사 콸라룸푸르 지사장은 15년이상 현지에서 근무해 오고 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이 회사의 장학금으로 말레이시아 국립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그는 회사로부터 유학하는 동안 현지의 친구들을 열심히 사귀라는 권유를 받았다. 장학금에는 아무런 조건이 붙어 있지 않았으나 「배운게 말레이시아」인 그는 유학을 마친 뒤 이 회사에 입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 때 사귄 현지 친구들은 각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되었다. 이 때문에 그는 전화 한 통화로 일을 척척 풀어갈 정도가 됐다.
필리핀의 최고 명문대인 필리핀대학에서 공부하는 아시아 각국의 유학생중 수십명이 일본으로부터 월 4백달러 가량의 장학금을 받는다. 특히 네팔 베트남등 후진국 학생들은 학비와 생활비로 쓰고 남은 장학금을 고향으로 송금하기까지 한다. 필리핀 유학생 유상훈씨(28·관광학 석사과정)는 『그들이 유학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면 자연스레 일본에 우호적인 인사가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교통체증이 서울 못잖게 심한 방콕에는 길이 4인 「라마 Ⅳ 고가도로」가 있다. 지난 92년 8월 태국 왕비의 60회 생일을 하루 앞두고 개통된 이 고가도로는 일본이 건설, 무상으로 기증한 것이다. 교통지옥 도시에서의 도로 무상기증, 그것도 왕비회갑일에 맞춘 개통은 화려하게 뉴스를 장식하면서 엄청난 홍보효과를 거두었다.
동남아의 길거리는 일본제 자동차의 물결로 메워진다. 동남아에서 일본 상품이 잘 팔리는 것은 단지 제품의 질이 우수하기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마닐라=김광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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