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가상 시나리오/제한공습론 대두… 비둘기파도 합세/“어차피 치러야할 전쟁… 어물쩡 안돼”/여론주도층 좌절감·편승현상 맞물려 강·온파구분도 사라져 미국에서 한반도 위기설의 망령이 춤을 추고 있다. 한반도 위기설의 망령은 마치 소련 몰락이후 퇴색해진 냉전적 사고에 「총동원령」을 내리고 있는듯 하다.
지난 90년에 사라진 미고공정찰기 블랙버드(SR71가 다시 취역하기 위해 기지개를 켜고 있고 조지 부시전미대통령이 재임시절 내렸던 전술핵무기 철수를 백지화하자는 목소리도 드세다. 여기에 도무지 제한적일것 같지 않은 북핵 시설에 대한 제한 공습론마저 대두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내에서 일고있는 한반도의 위기론은 영변 5㎿급 원자로에서 북한이 꺼낸 연료봉이 냉각되는 속도와 비례해서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이른바 「밴드왜곤(BAND WAGON·편승)현상」이다.
당초 대화에 의한 북핵문제 해결을 성원해오던 미국내 비둘기파들이 하나둘 둥지를 떠나 매파진영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은 북한측이 취하고 있는 일련의 조치를 지켜보면서 더이상 인내하기를 거부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북핵시설에 대한 공습론이나 한국전 불가피론을 중대한 인식의 오류라며 비난하던 미국내 일부 진보 논객들의 설자리를 잃게할 정도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 15일 워싱턴 포스트지의 논단에는 놀랄만한 글이 실렸다. 글쓴이는 포드와 부시대통령시절 백악관 안보 보좌관을 지낸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해군대장(예비역)과 아놀드 캔터전국무부차관보. 평소 비둘기파로 알려졌던 이들이 북한의 핵재처리시설에 대한 제한공습을 촉구하고 나선것이다. 캔터는 특히 지난해 6월과 7월 북·미 고위급회담이 열리기 전 북한 권력층의 실세인 김용순과 회담을 가진 적이 있는 사람이다.
북핵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국무부에서 이 글의 내용이 종일 회자됐음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이날 하원외교위에서 열린 청문회에서도 인용된 이 글의 제목은 「한국―행동을 개시할때」이다. 스코크로프트 제독과 캔터전차관보의 글은 북핵문제와 관련,미국의 여론 주도층의 좌절감과 이에 따른 밴드왜곤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들의 글을 간추리면 이렇다. 『평양측이 13일 IAEA 탈퇴를 선언한 것은 앞으로 그들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고 IAEA사찰관을 추방하며 핵시설에 설치된 카메라등 감시장비를 철거하겠다는 경고로 봐야 한다. 북측은 그들이 냉각탱크에 집어넣은 연료봉이 재처리에 적당한 온도로 식어질때를 기다려가며 유엔의 제재를 구실삼아 이같은 조치를 취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를 저지하기 위해 영변의 핵재처리시설을 제거해야 한다. 이러한 작전에는 물론 위험이 따른다. 하지만 어차피 치러야할 전쟁이라면 지금 치르는게 낫다. 더 이상 어물거릴 때는 지났다』
이들의 주장은 북한의 IAEA탈퇴 이후 미국 일반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북핵문제에 관한 미여론주도층의 견해가 보수와 진보라는 흑백의 편가르기를 불가능하게 만들고있다는 것이다.
보스니아나 소말리아등의 내전에 불간섭주의를 주창해 온 존 매케인 공화당의원이 주한미군의 즉각적인 전력증강을 촉구하고 있는 점이나 대북 강경파로 인식돼 온 도널드 그레그전주한미대사가 클린턴의 인내외교에 바람막이 역을 자임하고 있는 점등은 북핵문제를 놓고 벌이는 미국의 대토론이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혼전양상에 빠져있음을 보여주는 실례들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미국인들의 북핵논쟁이 어디까지나 그들의 국가적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태여 음모론적인 시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미국은 그들이 북핵문제를 세계적 위기로 부각시키는 것이 유익하다고 판단되면 전쟁을 불사할 것이라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클린턴행정부가 현상황에서 북한과 한판승부를 벌이기로 작심한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내는 현재 대북 강경대응의 분위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현재 미국이 취하고 있는 북핵해결의 시나리오는 당근보다는 채찍의 수순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보는것이 타당할듯 하다. 채찍의 수순은 북한이 자초한 것일수도 있으나 그로 인해 한반도의 위기는 당분간 고조의 상향곡선을 그려갈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위기의 고조곡선이 어느 시점에서 급상승의 기류를 탈지,또는 그 반대일지, 아니면 모두가 우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3년여를 끌어온 북핵문제는 마침내 벼랑의 바로 앞에 와있는것이다.【워싱턴=이상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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