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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문제를 생각한다/최상룡(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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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문제를 생각한다/최상룡(한국논단)

입력
1994.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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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나라 안팎에서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환경은 개인의 삶이나 국가의 수준이나 지구의 미래, 그 어느 관점에서 보아도 1차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환경문제에 대한 자각과 해결은 빠를수록 좋다.  지난해 2월 김영삼정부가 출범했을 때 나는 문민정부 5년동안에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최우선 과제는 환경오염을 해결하는 것이며 「환경대통령」이 가장 의미있고 매력적인 칭호라고 생각했다. 통일, 경제, 교육등 실로 풀기 어려운 도전이 도사리고 있지만 환경문제의 해결만큼 시급한 것은 없다. 누구나 통일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상대, 그것도 예측할 수 없는 상대가 있는 일이라 대통령의 의지와 국민의 염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아마 통일은 우리의 주관적인 소망의 결과가 아니라 객관적인 역사의 흐름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교육문제는 문자 그대로 백년지대계라서 기발한 아이디어로 하루 아침에 밀어붙여서 될 일이 아니고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수렴하여 점진적으로 개혁해나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경제문제는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으로 잠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상적인 과제이지만 우리나라처럼 수출로 국부를 키워야 하는 입장에서는 나라 밖의 여건이 큰 변수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환경문제는 모든 다른 중대과제의 바탕이 되며 국민의 의식수준과 함께 대통령의 확고한 철학에 따라 그 결과가 판이해질 수 있다.

 이제 환경오염을 수반하는 성장은 참다운 의미의 발전이 아니며 현대에 있어서 삶의 질은 환경문제의 해결없이는 향상될 수 없다. 사람들은 공해와 경제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상징적으로 설명하곤 한다.

 ①빵도 부족하고 공해도 없는 단계 ②빵과 공해를 같이 먹고 사는 단계 ③공해없는 양질의 빵을 먹는 단계. ①은 개발이전의 궁핍의 단계이고 ②는 개발독재에 의한 성장의 단계이며 ③단계부터 선진문명국가로 진입하게 된다.

 우리는 권위주의적 효율로 한강의 기적을 이룸으로써 그 지긋지긋한 가난의 멍에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에서 공해도 많이 먹어왔다. 한때는 당국이 공해를 문제삼는 사람을 공해로 몰아붙이는 어처구니없는 사례까지 있었다. 그리고 공해없는 사회라고 자랑하던 몇 남지 않은 사회주의국가도 지금은 무서운 공해에 허덕이고 있다. 경제의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는 중국은 이른바 사회주의형 개발독재로 전형적인 ②의 단계에 들어오면서 공해의 수준이 심각한 상태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유럽, 미국, 일본등은 60, 70년대에 이미 공해의 중요한 부문을 해결했으며 지금도 비전있는 지도자는 환경문제로 승부를 걸려 하고 있다.

 바야흐로 우리는 ②에서 ③의 단계로 과감히 방향전환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는 벼랑에 서 있다. 어쩌면 개발독재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결단의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등 4대강물에서 디클로로메탄, 벤젠등 발암물질이 다량 검출되었으며 생수도 한두가지 문제가 아니다. 관계당국은 끓여 먹으면 괜찮다고 하나 서울시민의 90%이상이 수돗물 자체를 불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기오염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우선 서울지역의 공기는 대기중 발암물질의 농도및 이에 대한 위해성 평가결과를 보면 유기용제로 추출할 수 있는 유기추출물질(EOM)의 경우 대기농도는 3.98∼6.75㎍으로 나타났으며 이 수준의 오염도를 지닌 공기를 건강한 성인이 계속해서 마실 경우 1천명당 1∼3명꼴, 다시 말하면 서울시민 3만여명이 폐암, 간암등 이른바 환경암에 걸릴 확률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와 수질오염의 위해성을 나타내는 수치는 이밖에도 많다. 더욱 한심한것은 이러한 조사마저도 지속적인 것이 아니며 아직도 환경오염물질을 전문적으로 판정하는 기관이 없다는 점이다. 당국의 해명과 환경운동측의 고발이 평행선을 이룰 때가 많으나 이제 우리의 환경오염이 위험수위에 있다는 점에 대해선 아무도 반론을 펴지 않는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폭력으로 사람이 죽는 전쟁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간접적이면서 인간을 서서히 죽이는 이 엄청난 구조폭력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기 쉽다. 제2차세계대전후 우리는 최초의 잔인한 이념전쟁을 체험했고 이제 다시 세계최악에 가까운 환경오염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앞으로 우리 국민의 평화로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동족상잔의 전쟁만은 막아야 하며 환경오염으로 대표되는 구조폭력을 배제하는데 전력 투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안전보장개념은 외침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는 군사안보와 함께 밖으로 세계적 추세인 환경전쟁(GR)에 대처하면서 안으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환경안보의 개념을 도입하지 않으면 안된다. 환경과 경제의 관계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경제성장을 중심으로 환경문제를 부차적으로 생각해왔다면 앞으로는 그 중심축을 환경문제로 옮겨 경제를 재조정하는 쪽으로 이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개발과 환경을 조화시키려는 리우선언에 유의하면서 세계적 추세에 적응하고 한국의 특수한 조건에 걸맞는 환경투자를 과감히 해나가야 한다. 국방예산의 1백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환경예산으로는 21세기의 바람직한 선진한국을 창출할 수가 없다.

 긴 역사적 안목에서 보면 환경내지 생명의 사상과 운동은 로마말기의 기독교와 중세말기의 르네상스운동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환경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은 자아와 조국과 인류에 대한 사랑의 표현임을 잊지 말자.<고려대교수·한국평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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