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안전협정은 유효” 강조 대응모색 지난 10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에 대한 원조중단을 결정한 결의안을 채택한 직후 북한측 대표인 빈주재 북한대표부 윤호진 참사관은 기자들에게 『이제 IAEA는 끝이다』라고 말했었다. 그는 그러나 『우리가 IAEA에서 나가겠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어쨌든 상응한 대응조치를 취하겠다』라고 경고했다.
IAEA 주변에서는 북한이 그동안 수차 경고했던 것처럼 핵확산금지조약(NPT) 완전탈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위협으로 여겼다. 북한이 IAEA를 탈퇴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북한은 IAEA의 결의안 채택 3일만에 전격적으로 이 기구의 탈퇴를 선언하고 말았다.
IAEA는 한 마디로 의외라는 반응이다. 또한 당혹감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유엔안보리 제재에 앞서 IAEA로부터 국제사회 최초의 제재를 갑작스레 당한 반면 IAEA도 북한으로부터 사상 처음 기구탈퇴라는 가장 강력한 「보복」을 당한 셈이다. IAEA가 회원국자격을 박탈한 경우는 남아공 한 나라가 있었지만 회원국이 자진해서 기구를 탈퇴한 전례는 없었다. IAEA로부터 북한과 같은 원조중단제재를 당한 이라크와 이스라엘도 기구를 탈퇴하지는 않았었다.
74년 IAEA에 가입한 북한과 IAEA와의 관계는 92년 1월 양자간에 핵안전협정이 서명된 이래 긴장과 대립의 연속선상이었다. 북한은 93년 2월 이 기구가 특별사찰을 요구하자 「미국의 앞잡이」라는 원색적 표현을 불사하면서 IAEA의 불공정성과 부당한 압력을 집중 비난했다. 북한은 IAEA가 북한체제를 말살하기 위한 서방의 정치적 목적을 추종하고 있다며 그동안 7차례나 IAEA결의안을 거부했다.
북한은 IAEA를 탈퇴함으로써 그들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IAEA의 부당성을 극적으로 부각시키면서 IAEA와의 끈을 끊어 이 기구가 그들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조치의 법적 근거를 제거하자는 의도가 분명한 것으로 IAEA는 보고 있다. 이는 앞으로 미국과의 협상에만 집착하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IAEA탈퇴를 선언하면서 핵문제의 종점을 의미하는 NPT탈퇴 여부에 대해선 태도를 유보한 것이 이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사실 IAEA를 탈퇴한다 해서 북한핵문제에 본질적인 상황변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되고 있는 핵사찰은 기본적으로 NPT와 관련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IAEA헌장 26조는 NPT조약 당사국으로 남아 있는 한 핵안전협정은 계속 유효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북한에 대한 핵사찰은 핵안전협정에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IAEA가 북한에 대해 주장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면서도 유일한 대응은 현실적으로 이것뿐이라고 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보면 기술지원등 원조를 받지 못하고 분담금을 내지 않는 것 정도다. 북한으로서는 크게 손해보지 않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선택일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IAEA탈퇴를 선언하면서 앞으로 핵안전조치의 연속성을 위한 사찰도 더이상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대목이다. 북한은 현재 평양에 남아 있는 IAEA사찰단 2명을 내보내고 감시카메라등 사찰장비의 유지보수마저 거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경우 IAEA는 북한이 5㎿원자로에서 모두 제거한 8천여개의 연료봉을 재처리할 경우 감시가 불가능하게 된다. 재처리는 연료봉의 방사능농도가 10분의 1 정도로 떨어지는 2∼3개월 내면 가능하다. 이는 북한이 처음부터 의도했든 안했든 그들에게는 새로운 강력한 협상카드가 될 수 있는 반면 국제사회의 긴장을 높여 경제적 또는 물리적으로 본격적인 대립을 앞당기는 양면성이 있다. 북한의 목적이 핵무기보유든 핵카드를 활용하는 것이든 궁지에 몰린 북한은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뒤 서방의 대응을 지켜볼 것이다.【파리=한기봉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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