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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미망인의 여행(장명수칼럼:1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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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미망인의 여행(장명수칼럼:1686)

입력
1994.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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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 살고 있는 60대 여성 다섯명, 이정희(63) 이병애(67) 안경식(69) 김상숙(68) 박정숙씨(62)는 지난 7일 11박12일의 중국여행을 시작했다. 한중문화협회가 주관하는 중국방문단에 참가한 30여명의 일행중 대부분은 북경·서안을 거쳐 중경에 도착할 때까지 그들이 효도관광에 나선 할머니들인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중경에서 일제시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쓰던 건물(시중구 연화지38)과 광복군 총사령부가 쓰던 건물(시중구 추용로37)을 방문했다. 1919년 국내외의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상해에 모여 수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대륙을 침략한 일본군에 밀려 항주·진강·광주등 6개 도시를 전전하다가 1938년 중경에 자리를 잡고, 1940년 광복군을 창설했는데, 당시의 건물들이 부분적으로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 있다.

 두개의 건물은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에 떨어져 있고, 주변은 복작대는 시장골목이다. 각종 채소, 국수, 옷감, 그릇, 고기, 생선등을 팔고 있는 시장은 발디딜 틈이 없을 만큼 사람과 상품이 꽉차있다. 광복군 총사령부가 쓰던 3층건물은 1층에는 식당, 2층에는 미장원이 들어 있고, 3층은 다닥다닥 작은 방들이 붙어 있는 숙소로 쓰이고 있다. 1, 2층은 비교적 깨끗하게 수리를 했지만 3층은 수십년 손을 안댄 듯 누추하다.

 2층에서 3층으로 올라 가는 나무계단은 삐걱거렸고, 3층의 방들은 우리를 1940년대로 이끌어 갔다. 금방 광복군용사들이 남루한 차림으로, 그러나 쏘는 듯 빛나는 눈으로 방방에서 나와 우리를 맞이해줄 것 같았다.

 그때 우리는 그 다섯명의 할머니들 눈에 맺힌 눈물을 보았다. 광복군의 아내들인 그들은 반세기전 남편이 오르내리던 삐걱거리는 좁은 계단을 겨우 걸어 내려 오고 있었다. 그들은 말했다.

 『서안에 내렸을 때 벌써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남편은 서안에 있던 광복군지대에 많이 가 있었기 때문에 늘 서안에 다시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했었지요. 서안사람들이 가난하게 사는 모습을 보니 지금도 저렇게 어려운데 남편이 독립운동을 할 때는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까 짐작할 수 있었어요』

 『그때 고생하던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잘 알고 있지요. 여름에 솝바지 저고리 한벌로 버티기도 하고, 겨울에 홑겹옷을 입고 떨기도 하고, 굶기를 밥먹듯 했다지요. 동상에 걸려 성한 발가락 하나 없었지요』

 그들의 남편, 강근호·석만금·유영중·이지성·임재남씨는 모두 세상을 떠났다. 안경식씨의 남편 유영중씨는 학병으로 끌려 갔다 만주에서 탈출하여 광복군이 된 후 해방된 조국에 돌아왔으나, 6·25 때 다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했다. 결혼 1년만에 남편을 잃고 자녀도 없이 혼자 살아온 「광복군의 아내」는 재혼안한 이유를 묻자 『남편만한 남자를 지금까지 못봤다』고 대답했다.

 반세기 전 남편의 발자취를 따라 중국에 온 광복군의 아내들은 『이제 국교가 열렸으니 독립운동연구가 좀더 활발해져서 선조들의 업적이 후손에게 바로 전해지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들은 중국에 관광온 한국젊은이들이 『광복군이란 그저 몇명이 모인 엉터리군대 아니었겠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중국 중경에서·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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