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적 타결 가능성 소멸” 단호/“협상용 으름장” 시각 신중론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탈퇴키로 결정한데 대해 미국 정부는 단호하면서도 조심스런 반응을 동시에 보이고 있다.
북한이 외교부대변인 성명을 통해 밝힌 내용을 그대로 이행할 경우 『이는 매우 심각한 사태』라는 것이 미정부의 첫번째 반응이다. 북한이 핵안전조치의 연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더 이상의 조치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한 대목은 북핵현안의 외교적 해결가능성을 스스로 무시해버림은 물론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해버리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로버트 갈루치 핵전담대사는 13일(현지시간) 이에 대해 『북한이 그들 주장을 실행에 옮길 경우 이는 우리와 국제사회가 강구중인 해결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디디 마이어스 백악관대변인이나 매커리 국무부대변인도 이날 『위험한 사태』라는 표현을 써가며 『만일 IAEA사찰관들이 북한에서 추방당한다면 유엔안보리는 이 문제를 긴급 현안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IAEA탈퇴성명을 곧바로 기정사실화하지는 않고 있다. 미정부가 이날 밝힌 논평은 한결같이 『북한의 주장이 사실이라면…』이란 가정법 표현을 첫 머리에 달고 있다. 북한이 대외적으로 탈퇴의사를 밝히긴 했어도 아직은 탈퇴에 필요한 법적 절차를 밟은 상태는 아니라는 얘기다. 미정부관리들은 『북한은 미국이나 IAEA에 탈퇴를 공식통보해 오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우리는 정확한 경로를 통해 탈퇴의사를 통보했다』고 주장했지만 미정부는 13일 현재까지 이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
IAEA규정 4조 B항에 따르면 「IAEA가입국이 되려면 기탁국의 승인이 필요하고 탈퇴시 문서로 탈퇴의사를 기탁국에 통보하도록」되어 있는데 기탁국은 다름아닌 미국이다. 또 기탁국인 미국은 탈퇴의사를 문서로 통보받는 즉시 IAEA이사회를 열어 회원국에 이 사실을 알리도록 돼 있으나 미국은 북한이 일부러 이같은 규정을 모르는체 하며 공식통보를 미루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왜냐하면 북한은 지난해 3월 NPT탈퇴시에도 유엔안보리에는 탈퇴사실을 통보했으나 「개별회원국에 대한 통보규정」을 이행하지 않아 탈퇴에 대한 법적 해석이 아직도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으로서는 설사 북한이 IAEA탈퇴에 필요한 절차를 완료한다 해도 이른바 NPT조약국으로서의 사찰의무가 자동소멸되진 않는다는 점에 유의하고 있다. 유엔회원국이 아니라도 유엔제재를 받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IAEA회원국이 아니라도 NPT조약 의무의 이행은 여전히 구속력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따라서 북한이 IAEA탈퇴라는 상징적 으름장을 놓으면서 소위 서방세계의 제재논리에 맞서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IAEA가 자기들에 대한 제재를 결정한 것에 대해 탈퇴로써 그 「부당성」을 부각시키려는 계산이란 분석이다. 미국은 그러나 북한의 IAEA탈퇴가 NPT탈퇴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IAEA제재결정에는 IAEA탈퇴로, 유엔제재결정에는 NPT탈퇴로 맞서겠다는 게 북한측의 「묵시적 협박」이자 이번 성명이 시사하는 골자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에 아직 남아 있는 사찰관들이 추방당할 경우 미국으로서는 외교적 해결에 대한 벼랑 끝 기대가 결국 무산되는 것인 만큼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북한이 NPT탈퇴카드를 즉각 내놓기 보다 IAEA탈퇴를 택한 것은 북한 입장에서도 NPT탈퇴가 가져올 파장을 두려워 하고 있으며 그만큼 막판까지 협상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음을 내비치는 것이라는 점을 미국측은 놓치지 않고 있다. 미국이 단호하면서도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워싱턴=정진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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