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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교재화운동/이현재칼럼(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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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교재화운동/이현재칼럼(화요세평)

입력
1994.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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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국신문편집인협회는 신문을 초·중·고등학교의 교재로 활용하자는 NIE (NEWSPAPER IN EDUCATION)운동 전개를 제의한 바 있다. 또한 정부도 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제안은 원리적인 교과내용의 주입에 치우치기 쉬운 교과서의존 일변도의 강단교육을 현실감과 생동감이 넘치는 교육으로 보완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뜻이 큰 것으로 본다. 더구나 신문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지적 집단의 한 부문인 언론계에서 발행하는 매체인 만큼 의당 교육적 가치도 클 것이다. 사회의 목탁이라는 말이 신문의 대명사처럼 쓰여지고 신문 또한 그렇게 자부하는 소이도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신문의 속성으로서의 예민한 현실감각, 그리고 신속한 정보의 전달, 여론의 형성 및 유도 이외에도 사회적 교양 및 량식의 전파매체로서의 기능등을 함께 고려할 때 신문은 사회적 계도성을 짙게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신문이 교과서적 또는 부교재로서의 기능을 다해주기를 바라는 뜻에서 몇 가지 주문을 하고 싶다. 신문이 감수성이 예민한 세대의 교재로서 활용되어야 한다는 견지에서 몇 마디 노파심의 변을 하고 싶다.

 첫째로 보도의 공정성과 논지의 지도성이다. 이것은 물론 항상 신문의 생명처럼 제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에는 공식으로 특정 이념지나 정파지를 표방하고 있는 신문은 없는 것같다. 그렇다면 신문은 최대한으로 사회적 통념의 공약수를 찾고 보편적 설득력이 강한 객관적 지도성을 지녀야만 청소년의 사고를 혼란케 하지 않을 것이다. 어찌보면 이것은 신문의 본질적인 일일 수도 있고, 또한 공정관이라는 가치판단이 수반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객관화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어려움도 있기는 하다. 다만, 교재화한다고 할 때는 일련의 긴장감이 감돌기 때문에 몇 마디 언급하고자 할 따름이다.

 다음에 전문성이 높은 문제에 대해 비전문인이 이를 다루는 경우 지식의 위험성이 따르기 쉽다. 따라서 높은 전문성이 요청되는 분야에서는 그에 합당한 인력을 확보함으로써 질높은 내용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이는 사회가 다원화시대로 들어가면서 신문이 획일성을 탈피하기 위해서도 긴요한 것으로 본다.

 다음은 내용의 일관성과 연계성을 더욱 높여 주었으면 한다. 동일지상에서 사설논조와 기사유도가 다르거나, 논조와 기획내용이 다른 경우에는 독자를 당혹케 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도 그 예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것인데, 신문의 전체적인 논조는 대학입학시험 과열현상을 우려하면서, 유력 신문들이 경쟁적으로 귀한 지면 4면씩을 전면 수학능력시험 모의시험문제로 가득 채우고 있다. 어쩐지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러한 것들은 수험전문잡지나 학원신문등에 맡기고 그 많은 지면을 사회적 계도성이 큰 다른 내용으로 대체한다면 신문의 체통도 서고 사회적 기여도도 더 커질 것이 아닌가 한다. 경쟁관계가 있기 때문에 한 신문사 단독으로는 결단을 내리기가 어려울 것인 만큼 각사가 공동으로 협의해서 결단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인지 하는 생각도 든다.

 다음은 적극적·발전지향적 내용을 더욱 키우고 소극적 퇴영적 내용은 축소하는 경향을 더욱 강화했으면 하는 느낌도 있다. 또한 신문이 갖는 센세이셔널리즘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로되, 선행의 기사분량이 악행의 분량을 압도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런 경우 부도덕한 자·악행을 자행하는 자가 소외감과 열등의식을 느끼게 할 계기를 마련해 줌으로써 사회교육적 의의를 크게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것은 물론 사실을 은폐해야 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뜻임에 이해있기 바라고 싶다.

 다음은 간결성과 호소성을 지니는 신문문장의 특성과 장점은 인정하면서도 문장을 최대한 표준화시킬 때 국민교육적 의의가 더욱 커진다고 본다. 그리고 오식의 근절이 철저하게 독려되었으면 한다. 물론 절박한 시간에 제한된 인력에 의해서 수행되는 작업인 만큼 오식이 있을 수 있을 것임은 나름대로 이해를 해 본다. 어느 소설가의 작품에서 상대방의 잇사이에 낀 고춧가루 한 점때문에 혼담이 깨졌다는 대목이 기억나는데, 훌륭한 기사나 논설이 의외로 오식 하나 때문에 그 내용에 대한 인상을 크게 손상시켜 버리는 경우가 있다. 특히 한자는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한글보다도 그 오식이 더욱 두드러지게 눈에 뛰는 경우가 많다. 선진국의 신문이나 잡지에서는 오식이 거의 전무하며, 오식발견에 대해서 독자에게 현상금을 거는 사례까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 신문독자의 한낱 넋두리가 될지 또는 한 교원의 소심한 기우가 될지 모르나 신문의 교재활용 구상이 제기된데 즈음하여 몇 가지 소회를 산만하게 적어 보았다. 언급한 말들에 대한 당부여부의 판단은 신문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일이며, 적절한 참고·취사있길 바랄 따름이다.<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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