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일보 40년은 우리의 가족사”/3대째 독자 경주 김의진씨가정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일보 40년은 우리의 가족사”/3대째 독자 경주 김의진씨가정

입력
1994.06.13 00:00
0 0

◎부친,창간때부터 인연… 손자까지 이어져/교육연재물 등 스크랩 빼곡… “흥미 치우치지 않는 점잖은 신문” 김의진씨(54·경북 경주시 서부동 250의 16)일가는 격동기의 세월을 오로지 한국일보와 함께 살아왔다. 지난해 81세로 작고한 부친 김성도옹이 1954년 6월9일 창간호부터 구독하기 시작한 「인연」이  아들인 김씨와 손자 종명군(20)까지 3대로 이어져 한국일보 40년의 역사가 곧 가족사이기도 하다.

 경주 근화여중·고 음악교사인 김씨는 한국일보를『굿거리장단처럼 구수하고도 바이올린 선율처럼 예리한 신문』이라고 평한다.『지나치게 흥미위주로 치우치지 않고 쉽게 흥분하거나 노하지 않는 「점잖은」 신문이 한국일보』라는게 김씨의 평이다. 아침 독자들이 꼭 알아야 할 신선한 정보의 맛을 잃지 않고 하루 일과중 한가지 이상의 화젯거리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부친의 선택을 이어 애독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아침운동을 하고 토함산 약수를 뜨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김씨는 제일 먼저 신문부터 가져와 거실바닥에 펼쳐놓는다. 5시 이전에 신문이 배달돼 있지 않을 때는 어김없이 보급소에 전화를 걸어 항의하기도 한다.

 한국일보 창간독자인 부친의 엄한 지시로 김씨가 신문을 읽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때. 당시 고향인 경주군 안강읍에서 읍사무소 공무원을 하며 성인교육을 담당했던 부친은 열렬한 「신문광」이었다. 『독서를 하지 않고 신문을 읽지 않는 사람을 안좋게 보셨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학교만 졸업하면 「글읽기」와 담을 쌓는 바람에 현대의 정신문화 발전이 더디다는게 김옹의 지론이었다. 김씨도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한국일보에 대한 애착이 주위사람들에 대한 권유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김씨의 낡은 스크랩엔 70년대 고은씨가 연재한「노래의 사회사」와 「산하기」를 비롯한 각종 문학기행시리즈, 84년5월 가정의달에 연재한 「우리의 자녀 지금 어떤가」와 91년부터 시작된 「교육을 살립시다」등 교육관련 기사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50여편의 교가와 응원가「5월의 노래」를 작곡하는등 활발한 창작활동을 펴고 있는 김씨는 『한국일보가 많은 특종을 했지만 스페인에 살아숨쉬는 안익태선생의 혼과 정신을 국내에 다시 불러들이고 그를 되살리는 기념사업을 벌인 것은 뜻깊은 일』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부인 우경희씨(50)와 큰아들 종명군(20)의 한국일보에 대한 애착도 대단하다. 월요일자「생활경제」는 늘 우씨 몫이다. 경주시 구정동의 친가도 창간독자다. 우씨는 『최근들어 지면에 여성분야와 과학 컴퓨터 레저 스포츠등 생활과 직결된 기사의 비중이 늘어나 좋다』면서 『광고도 정보인 만큼 선별작업과 배치에 주의를 기울여 기사와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한다』고 지적한다.

 김교사는 『오늘과 같은 정보의 홍수시대에 한국일보가 매일 「정확하고 정직한」, 그야말로 새로운 신문을 만들어 간다면 불혹을 넘긴 지금부터의 지면이 오히려 더 기대된다』며 창간 40주년을 맞은 한국일보의 전진을 기원했다.【경주=김호섭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