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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불귀의 객」/변형섭 주간한국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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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불귀의 객」/변형섭 주간한국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4.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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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강점기에 소위 「황군」의 성노리개로 희생됐던 한국 여인들. 10만∼20만명 정도로 추정되는 종군위안부들 중 대부분은 해방이 된 뒤에도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은 만신창이가 된 심신을 이끌고 다시 중국·동남아 등지를 전전하다 그곳서 뿌리를 내려야 했다. 그중 상당수는 여생을 수치심과 외로움 속에 지내다 끝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14살 때 일본군에 납치돼 5년동안이나 성적 노예생활을 해야 했던 정계화 할머니(69)가 지난10일 반세기만에 고국을 찾아왔다. 중국 중부 안휘성의 벽지에서 외로운 말년을 보내고 있는 정할머니 역시, 「잊혀진 종군위안부」 중의 한사람이다.

 중국 각지의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다니던 할머니는 44년말 림분의 일본군 부대에서 미군의 폭격을 틈타 극적으로 탈출, 비로소 악몽같은 위안부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유의 몸이 된 후에도 국·공내전통에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던 할머니에게 말 한마디 안 통하는 타국 생활은 일본군 위안부 생활 만큼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할머니는 생존방편으로 중국인과 결혼했으나 아이를 못 낳는다는 이유로 곧 이혼을 당했으며 젊어 얻은 신경통에 정신착란증까지 겹쳐 비참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

 정할머니의 모국방문을 성사시키는데도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특히 할머니의 「국적문제」가 가장 큰 장애였다. 중국 정부가 발행한 신분증명서에 그의 국적은 「조선」으로 돼 있는데, 당초 외무부 당국은 『중국에서 「조선」은 으레 북한을 의미하기 때문에 북한교포의 내한은 불가능하다』며 입국불가의 반응을 보였었다. 이때문에 모국방문을 추진해온 상도성결교회 성도들은 중국 공안국에서 할머니가 「남한 사람」임을 입증하는 확인서와 고향 경북 감포에서 「린우증명서」까지 갖춘뒤 몇개월만에 어렵사리 비자를 얻어냈다.

 영구귀국은 더더욱 힘들다. 법무부 담당자는 『공산권 국가에 거주하는 교포가 국적을 회복하려면 「독립유공자나 그 후손」이어야 한다』며 『실정법상 해외 거주 종군위안부 출신 여인들이 국적을 회복하기는 1백% 불가능한 셈』이라고 밝히고 있다. 어느 하늘 아래 살아있을 그들 모두는 이미 살아있는 「불귀의 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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